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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y 23. 2022

나를 살아가게 하는 힘

경청

    이십 대가 다르고 삼십 대 사십 대가 다르고 내가 속한 오십 대가 또 다르다. 뿐만 아니라   한 해가 다르다. 느끼는 게 다르고 바라보는 방향이 다르고 중력의 힘을 감당하는 정도가 다르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것들 속에서 지금의 나는 무엇으로 사는가?

 

  우리 아이가 물었다. "엄마, 엄마는 어떨 때 제일 행복하세요?" 망설임 없이 바로 답했다. "너희들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게 가장 행복하다." '엄마'라고 불린 사람들은 같은 마음 일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나의 에너지는 '칭찬'이다. '칭찬'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나는 유난히 '칭찬'에 목맨다. 모르긴 해도 성장기에 '칭찬'과 관련된 '결핍'이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보곤 한다.

  

  표현하기 편하게 '칭찬'이라고 했지만 '칭찬'이라는 동그란 계란 같은 알맹이 말고 들어주는 것, 그리고 반응해주는 것 그런 작은 닭의 모이 같은 과정이 사람을 살맛 나게 한다.

 

  아이들을 기를 때 가장 중요한 게 뭐냐고 묻는 분들이 있었다. 리액션(reaction)과 피드백(feedback)라고 답했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다. 아이들에게 집중해야 나올 수 있는 행동이다.


  가끔 황량한 사막을 걷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분리되고부터 갖게 된 기분인 것 같다. 나 홀로 세상을 저벅저벅 걷는 기분, 쉽게 말해 끝 모를 공허함을 시도 때도 없이 느낀다. 그런 와중에 송송 뚫린 빈 마음을 둘 곳이 없지만 그래도 내 곁에서 무슨 말이든 다 들어주는 오아시스 같은 남편이 있어서 근근이 살아낸다.


  여성은 과정이 중요하고 남성은 결과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들었다. 그래서 부인이 과정을 미주알고주알 말하면 아직 본론도 들어가기도 전에 남편은 "그래서, 결과가 뭔데?"라고 한다는 것이다. 갱년기를 기점으로 에스트로겐과 테스토스테론의 양이 교차되면서 여성이 "결과가 뭔데?" 한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 든 주변 배경지식이 있어야 전체적인 결과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과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말을 하곤 했었다. 그런데 요즘 서서히 "서론, 본론 필요 없고 결론이 뭔데?" 하는 마음이 든다. 분명 여성호르몬 부족 현상인 것 같다. 가만있는 테스토스테론이 줄어드는 에스트로겐 때문에 내 몸을 지배하는 호르몬이 되어버렸다.


  무미건조한 내게 때아닌 복덩이가 생겼다. 오피스 와이프란 얘긴 들었는데 동성인 그녀가 내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기 시작했다. 한 사무실을 쓰다뿐 각자 다른 업무를 하는데 일을 하면서도 얘기를 나누곤 하는데 서로 채증을 느끼는 그 무슨 얘기든 들어주는 사이가 되었다. 좀 불편할 거란 걱정 속에서 시작했는데 전근 온 지 채 삼 개월이 되지 않았는데 소울메이트(soul mate)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을 하게 된다. 왠 복인지 모르겠다.

 

  누군가의 손과 발이 되어 주고 호떡집에 불이라도 난 것처럼 동분서주했던 시간들을 지나고 이제는 한적한 오솔길을 걷고 있다. 풀잎이 바람에 부딪히는 소리까지 크게 들리는 고요함 속에 파묻혀서 누구라도 좋으니 내 소리를 들어주었으면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누구든 내 말에 집중하고 내 말에 반응하면서 나의 손을 잡고 정담을 나누는 이가 나의 벗이요 친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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