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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un 04. 2022

외로움의 농도

외로움, 내 남편

  피로감이 나를 점령하여 파김치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어제를 책장의 뒷면처럼 덮어버리고 새로운 오늘을 맞았다. 피로감의 후유증으로 눈의 염증을 감당해야 되는 상황이지만 고요 속에 눈을 떠있는 이 시간이 좋다. 소유욕인지 외로움을 즐기는 중인지 모두 잠든 이 시각 나 홀로 침묵의 한가운데에서 표표히 숨을 쉬고 있는 내가 좋다. 고요 속에서 거울도 없는데 나는 나를 보게 된다. 침묵 속에 고요함 속에 나는 풍덩 빠져있다. 한참을 멍 때리다가 이내 하얀 눈 위에 발자국을 내는 것처럼 또각또각 활자를 두드린다.


  어제는 많이 분주했다. 아이들이 주거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여 새로운 주거지를 알아보고 또 그로 인해 그들을 만나야 하는 경우도 생길 수가 있어서 그들을 위해 짧은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준비해 가기 위해 새벽부터 시간이 가는 걸 아까워하면서 반찬들을 만들었다. 결국은 상황이 서두르지 않아도 되어서 아이들을 만나러 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고 그 반찬을 내가 먹게 되고 말았다. 강제로 나를 위한 만찬을 들게 되었다. 사랑을 듬뿍 담아서 만들었던지 나는 피로감을 조금씩 탈출할 수 있었다.


  상당히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 새로운 풍경을 보는듯한 묘한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다름 아닌 내 남편의 모습이었다. 내 남편과 근 삼십 년을 살면서 궁금증이 있었다. '왜 결혼이란 걸 하였나? 굳이.'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미 다 갖았는데 굳이 뭘 또 새로 가정을 꾸렸을까? 부모님 형제, 원래 가족이면 완전한 충만한 행복이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남편은 부모님이 교주고 그는 광신도와 같은 사람이다. 내가 지칭하는 그의 닉네임은 '국가대표 효자'다. 뼛속까지 초지일관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하는 효자중의 효자다.


  뿐만이 아니다. 형제들에 대해서도 남다르다. 모든 건 혼자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행여 동생들과 같이 하면 동생들에게 부담이 될 수 있어서 절대 그들을 독려해서 같이 하거나 그러지 않는다. 몸을 쓰거나 돈을 쓰거나 그 무엇도 다 혼자 감당한다. 언젠가 우리 둘째가 하는 말이 있다. "아빠 형제간은 늘 평화로워요. 늘 아빠가 다 하시니까 그런 것 같아요." 그랬다. 어린아이 눈에도 읽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덤으로 형제들은 그들의 형인 내 남편을 많이 위한다.


  그런데 어제 아이들 중 한 명의 짐을 십여 일 정도 맡겨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여 가까이 사는 작은 아빠들의 도움을 청하는 게 어떻게냐고 제안을 했었다. 알았다고 의논해 보겠다고 했었다. 그런데 이내 다른 방법이 없겠냐는 것이다. 그런 그 사람의 생각을 듣고 내가 여기저기 알아봐서 대안을 찾았다. 난 나 혼자 혼란스러웠다. 뭘까? 내 남편의 속 마음은 뭘까? 형제들에게 귀찮게 하기 싫은 배려일까? 아니면 그 마음이 뭘까? 들어주기 난감한데 형이니까 거절하지 못할 것만 같아서일까? 그들은 흔쾌히 협조할 것이다. 그런데 주저하는 내 남편이자 그들의 형의 마음이 그냥 배려만 아닐 것 같은 느낌이 그 느낌이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가 목숨처럼 아끼는 그의 형제들인데 저 마음은 뭘까? 마음 부자인 내 남편이 궁금했다.


  어쩌면 외로움은 누구나의 친구이거나 동반자 같은 것 일거라는 생각을 한다. 가끔 받아들이면 그때마다 나와 정면으로 만나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이고, 힘들다. 버겁다 싶으면 그 또한 외로움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 감정선의 농도로 나는 나를 만나거나 힘들거나 하는 것 같다. 가끔은 나 혼자 나는 외 줄 현을 타는 연주자 같은 게 인생일 거라는 생각도 한다. 그러면서도 아니 그래도 내겐 내 주위엔 나보다 나를 더 위하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버티고 이겨내면서 살아낸다. 그들을 향한 애정의 농도가 남다르다는 건 확실한 내 남편, 왠지 외로워 보였다. 부모형제가 서로 신앙인 내 남편의 속 마음이 궁금했다. 부디 그가 애정 하는 그들 속에서 만큼은 외롭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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