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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un 23. 2022

기대, 그 뒤의 쓸쓸함

인생

  물오른 유월의 나무는 보고만 있어도 에너지를 준다. 그런 나무들이 군락을 이뤄 바람에 살랑살랑 움직이면 그들의 움직임에 모든 시름을 잊게 된다. 새벽 공기를 가르며 뒷산을 올라 입고 있던 옷이 땀으로 적셔지도록 달리다가 잠시 쉬어가기 위해 의자에 누워 하늘을 본다. 나뭇잎이 하늘이 되어 살랑거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힐링 포인트다. 주는 것 없이 한없이 받기만 해도 되는 건지 고맙다. 자연은.


  헉헉 거리며 달리던 산책로의 끝에 다다르게 되어 저절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은 채 달리는데 어찌해볼 틈도 없이 하루살이가 입속으로 들어갔다. 퉤퉤 거리며 뱉어보지만 나올 수 없는 곳까지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뿐만 아니다. 어제는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뱀도 늘 다니던 산책로에서 보았다. 그래서 더 멀리 있는 길을 이용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요사이 잦은 비로 두꺼비도 심심치 않게 만난다.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원치 않는 일들을 경험하곤 한다.


  요즘 앞만 보고 산을 오르다가 어디쯤에 다다르게 되면 산 아래 펼쳐진 풍경을 돌아보곤 한다. 그런 것처럼 이제 한숨 돌리는 시기인지 마음 나눌 누군가를 찾게 된다. 아무리 돌아봐도 만복감을 느낄 만큼의 친밀감을 느끼는 친구가 없다. 생의 마지막에서 함께 있고 싶은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했던 지금도 버릴 수 없는 내 친구는 내 기쁨 앞에서 얼음이 되어 하지를 넘긴 지금까지 녹지 않고 있다. 그런 씁쓸한 경험을 하고부터 진정한 친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친한 지인들은 아직도 적지 않게 있다. 그러나 욕심 인지 난 일체감을 느낄 만큼의 친밀감을 느끼는 친구를 원한다. 그런 관계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내가 문제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내 기쁨에 진정 기뻐하며 한 없이 허물없는 친구를 있다고 믿고 끝까지 찾아보려 한다. 그런데 좀 안타까운 나만이 갖고 있는 측정기 같은 경험치로는 철없을 때 사귄 친구가 그나마 혈육 같고 진한 친밀감을 느낄 수 있지 지금 와서 누굴 사귄 들 내 마음을 다 채울 수 있는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싶다.


  믿음직한 친한 동생도 있고 내 기쁨에는 얼음이 될지라도 내 슬픔에는 귀 열어 줄 친구는 있으니 그 정도로 위안 삼고 오늘을 터벅터벅 걸어가야겠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참 쓸쓸하다. 아흔아홉 칸 대궐집을 갖은 이 가 한 칸을 더 채우려는 욕심인지 진정한 친구가 허기지다. 그건 어딘가에 파라다이스가 존재할 거라는 망상이거나 그것도 아님 무지개를 기필코 내 손으로 잡고 말겠다는 아집 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물을 한잔 권하더라도 팔 할을 채워서 건네듯이 마음을 가득 채워 누군가에게 주는 경우는 없을지도 모른다. 그걸 원하는 내가 마음을 고쳐먹어야 하는 게 더 맞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니라고 있다고 너를 다 내놓고 기다리면 나타날 거라고 누군가가 확신에 찬 한마디를 해줬으면 좋겠다. 그것도 아니면 일상을 나누면 친구지 영혼을 나누려고 덤비지 마라고 짚어주는 이가 있어도 그 말을 덥석 믿고 마음 편하게 살고 싶다. 눈이 두 개고 입이 하나이듯 내 마음속엔 쓸쓸함과 외로움이 늘 머무르는 거라고 그래야 사람이라고 알려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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