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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un 18. 2022

   결혼과 이혼 사이

결혼과 이혼

  인간의 신체에는 100조 개의 세포가 있단다. 우주에 있는 별의 개수와 비슷하다니 놀랍다. 놀라운 우리의 신체는 참 대단한 작품이다. 같이 숨 쉬는 만물들이 인간을 볼 때 '다 갖은 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 갖은 자'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뭘 더 갖겠다고 그리도 요란한지 참 알 수 없는 요지경 속이다.


  인간을 포함한 만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순간에도 빛과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는 또 다른 무언가의 도움 없이 나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다. 시시각각 그 그림자도 변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가 존재하고 있다고 확인시켜준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칭하는 건 분명 스스로 칭하고 싶은 거지 인간을 제외한 만물들의 동의가 있었던 건 아닐지도 모른다. 만물들 중에 탁월한 작품과도 같은 신체를 부여받아 과연 그 탁월함을 인정할만한 행동을 하고 사는가? 미물들 사이에서 영장류에 속할 뿐 인간들 간의 조화를 이루면서 잘 사는가? 점검이 필요하다.


  스스로 우두머리라고 칭하지만 불완전한 게 또 인간이다. 수많은 잘못을 하면서 반성도 하고 스스로 채찍도 가하면서 살아간다. 빛과 그림자가 있듯이 좋은 면이 있으면 나쁜 점도 있다는 걸 알고 그걸 수용하면서 서로 적응해가는 지혜와 노력이 필요한 것이 인간들 간의 삶의 방법일 거라는 생각이다.  

 

  결혼하고 이혼하고 화해하고 다시 결혼하고, 결혼과 이혼을 소재로 한 다큐 프로그램이 그 어떤 작가의 작품보다 더 드라마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찾아보게 된다. 결혼이라는 건 변함없이 사랑하겠다는 약속이다. 둘이서만 하면 쉽게 약속을 깰까 봐 많은 하객을 모셔놓고 다짐하는 게 결혼이다. 그런데 그 다짐을 깨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문제를 풀고 오답을 하면 속상하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오답을 했을 경우 그 속상함이 조금은 덜하다. 그런 것처럼 이혼하는 사람이 집집마다 있으니 예전 같지 않게 더 편해졌다. 그리고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이혼'이라는 글자를 떠올려보지 않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혼이 마치 삶의 한 방편이 되어가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수뇌부들의 결정으로 나라 간 전쟁을 한다. 그들의 결정이니 그런가 보다 하고 바라볼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애꿎은 생명을 앗아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혼은 조직의 최소 단위인 가정이라는 곳에서의 전쟁이다. 어린 자식은 상처를 받고 늙은 부모는 죽을 만큼의 슬픔을 맛본다. 다큐에서 아이가 이혼한 부모 앞에서 무릎을 꿇고 다 같이 살고 싶다고 꼬막만 한 두 손을 모아 간청했던 장면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결혼생활은 그 어떤 수도생활 보다 더 깊은 수행을 하는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나'가 바로 선 상태에서 상대를 만나 결혼을 해야 된다. 건강한 정신을 갖은 이가 결혼을 해야 되지만 결혼과 동시에 시력과 청력이 좀 낮아지는 마인드가 필요하다. 연애시절엔 구석구석 살피고 결혼하면 대범하게 쿨하게 넘길 줄 알아야 한다.


  나는 결혼을 작심한 시작부터 쿨했다. 내 관점에서 몇 가지 단점을 보았지만 상대가 나를 볼 때도 못지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결혼을 작심하게 되었다. 대신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근본이 바로 선 사람이다는 믿음은 갖았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시작뿐이 아니다. 결혼생활 중에도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쉽지 않은 게 결혼생활이다. 불현듯 교사로 은퇴한 분이 이런저런 불만을 토로한 걸 들었는데 의외로 그 어려운 수학을 뭐하려고 그렇게 죽기 살기로 가르치는지 모르겠다고 날 보고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으셨던 생각이 난다. 난 당연히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어려운 문제를 푸는 건 어려움을 극복하는 훈련이란 생각을 했다. 덤으로 어려울수록 정답을 구하면 그 성취감이 크기 때문에 좋아하는 과목인데 필요 없다는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어려운 수학 문제보다 더 어려운 게 결혼생활이겠지만 서로 노력하다 보면 안 풀릴 문제도 아니라고 본다.

 

  자동차 운전을 하는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혼자만 잘해서 무사고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고 말한다. 결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이혼한 분들도 무사고 운전을 원했지만 나 혼자 잘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혼을 선택할 것이다. 그래서 결혼은 더 중요한 선택이고 결정이다. 사랑이란 감정에 취해서 또는 어찌어찌하다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선택과 결정에 책임을 져야 한다. 스스로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었지만 난 우리 자식들의 부모이고 그중  다른 한 분을 선택하고 결정한다. 그게 결혼이고 결혼 생활이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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