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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ul 10. 2022

변화를 체감한다.

변화


  우리 또래들의 대화 중에 그래도 우리 때가 좋았다는 얘기를 한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전쟁을 겪은 것도 아니고 가난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나라로 외화벌이를 나선 것도 아니고 그래도 우리 때가 다행인 시대를 살았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순탄한 시대를 살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시대에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되새겨보면 피나는 전쟁도 노동도 아닌 피를 흘려가면서 찾으려고 했던 것들이 있었다. 최소한의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민주주의를 외치며 살았다. 전쟁터를 방불케 한 상황들이 평범한 사람들의 삶 속에서도 있었다. 그걸 잊고 지금을 사는 중에는 그저 평화로웠다고 생각해버린 것이다. 지금의 평등한 사회가 되기까지 고귀한 희생이 있었다.


  지금도 불평등 속에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평균적으로 많이 평등해졌다는 것이다. 부모세대인 우리들은 자식 세대인 지금의 청춘들의 삶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청춘도 낭만도 없는 경쟁만이 있는 시대를 산다고 생각하는 까닭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런데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 물리적인 전쟁을 하며 살았던 조상들과 정신적인 전쟁을 살아낸 시대가 지나고 이제는 온전히 '나'를 다스리며 살아내야 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생각이다. 환경이나 너의 영향으로 내가 살아지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나'에 의해 내가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고 생각한다. 렇다면 어쩌면 지금이 가장 살만한 세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할 때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일하는 직업은 은행에서 뿐이었던 것 같다. 평범한 직장에서 근무했던 나는 엄지와 중지에 굳은살이 배기도록 글씨를 썼었다. 굳은살뿐이 아니었다. 움푹 파인 것처럼 쑤욱 들어가 있었다. 거의 이십 년이 지나도록 그 흔적은 남아있었다. 팔십 년도에서 구십 년도로 바뀌면서 컴퓨터 교육이 왕성해지고 컴퓨터가 대중화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이십여 년이 지난 후 전업주부를 하다가 직장을 다니게 되었는데 모든 것이 바뀌었었다. 특히 모든 일이 컴퓨터로 진행되었다. 처음 접했을 땐 속으로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와~, 대단하다!' 그 후로 점점 익숙해지자 하나하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업무 방식만 전산화되었을 뿐이지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예전 이십 년 전의 직장생활 때 보다 더한 전근대적인 사람들이 버티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와~, 대단하다!'가 '와~, 아직 멀었구나!'로 금세 생각이 바뀌고 말았다.


  뿌리 깊게 서민들에게 군림하던 공무원들이 지금으로부터 약 이십여 년 전부터 한 순간에 봉사하는 공무원들로 바뀌었었다. 그 배경에는 공무원들의 인사 평가에 대민 평가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자 묻지도 않은 것까지 설명해주고 잊고 있던 질문들도 찾아서 답해주는 시대로 바뀌어버렸다. 그야말로 국민이 주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겪게 된 것이다. 그런 변화의 바람이 직장생활 십일 년 만인 최근 우리 직장에서도 조금씩 일고 있다. 고질적인 관리자들의 갑질이 조금씩 근절되어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평가의 영역은 늘 관리자들의 몫이었는데 이제는 상호평가가 생겨나서 그렇게 군림하던 관리자들이 바뀌어 가고 있다. 불필요한 '눈치'가 사라지고 정정당당한 의결권이 생겨나고 있는 것을 체감한다.


  가정에서 아이를 낳고 기른 엄마로서 고백한다. 불평등과 비 민주적인 걸 겪었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나도 그 의식에 세뇌되어 걱정하면서도 내가 겪었던 그런 과정을 답습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딸아이인 큰아이를 기르면서는 앞으로 겪어야 할 출산, 육아 기간을 생각해서 자격증을 갖춰서 영구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끌었다. 경력단절의 상황을 겪을 것을 걱정해서 그런 거다. 그건 그리 불평등한 생각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출산은 모르지만 육아까지도 아직도 여자의 전유물로 생각하고 있는 게 깔려있다. 그리고 아들들에게는 음식 만드는 걸 권했다. 앞으로 모두 맞벌이 시대를 살아내기 위해서는 가사가 남녀가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적극적으로 권했다. 그래서 두 아들은 음식을 잘한다. 반면에 딸에게는 부엌일 하는 걸 권하지 않았다. 원튼 원치 않든지 숙명적으로 접해야 하는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미리 그 수고를 경험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이들의 성장과정 중에 양성평등이란 글쓰기를 쉼 없이 하는 걸 지켜보았음에도 완벽한 양성평등이 실현되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 변화의 핵심은 '의식'이란 걸 간과할 수 없다. 누적된 관습에 의해 본인도 모르게 본인이 누군가에게 안 좋은 관습을 답습하곤 한다. 의식의 흐름을 변화하게 만드는 방법도 존재했다. 수직적인 사고가 수평적인 사고로 전환되게 하는 방법이 있었다. 일방적인 평가가 아니라 쌍방향 평가가 직장의 풍토를 바꿨다. 그리고 사회 분위기도 바꿨다. 물질적인 풍요 속에 진정한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평등'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가까이 그 평등이 숨 쉬고 있다. 이 변화의 바람을 타고 차세대에는 기본이 갖춰진 초록 운동장에서 원 없이 뛰어놀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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