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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ul 23. 2022

고통과 행복의 공존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도 바위와 돌과 모레와 이끼를 만나면서 점점 맑아진다. 특별한 노력에 의해서라기 보다 그렇게 물 흐르듯이 우리네 마음도 정화되어 건강하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그게 그리 쉽지가 않아서 생과 사의 기로에 서서 간혹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기도 한다. 간도 자연의 일부라 자연으로부터 많이 치유받거나 의지하게 된다. 힘들 때마다 숲 속에서 무념무상으로 멍을 때리거나 더 힘들면 가만히 있는 공기를 바람을 일으키며 달리곤 한다. 사람인 까닭에 생각하게 되고 또 아파하는 게 아닌가 한다.


  여기까지 긴 여정을 걸어오면서 상처 한 번 안 받아보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거다. 뭐 누구나 있음 직한 가까운 사람에게서의 '배신감' 그게 가장 큰 상처가 아닌가 한다. 내 기쁨을 나처럼 기뻐할 거라는 믿음으로 기쁨을 가장 먼저 알리고 헌신했던 사람에게 내 생명과 직결된 위급한 상황에서 돈 걱정부터 하는 말문이 턱 막히는 경험을 했었다. 그럴 수는 없다는 생각에 그분의 행동을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으며 내 귀에 들어온 그 말을 덜어내기 위해 수없이 퍼냈었다. 그로 인해 그분을 향해 순수하게 헌신했던 내 마음을 거둬들이는 행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많이 지난 지금은 흉터로 남았고 없던 벽이 생겼지만 그래도 또 사노라니 살아진다.


  날마다 먼동이 틀 때쯤 뒷산을 오른다. 그때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을 어김없이 마주친다. 걷다가 뛰다가 몇 킬로미터를 지나다 보면 구름다리를 만난다. 그곳에 이런 말이 쓰여 있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별거 아니에요.' 산을 뚫어 터널을 만든 게 아니라 산을 절단을 내어 50미터 아래는 도로를 내고 그 위에는 구름다리로 연결을 시켰다. 그런데 그곳에서 잊을만하면 자발적인 추락사가 일어난다. 더 이상의 사고를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하지만 그래도 비보는 끊이지 않는다. 그곳을 지나며 그 글귀를 볼 때면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생각을 상기시켜보곤 한다. 그런 사연을 품은 다리 위를 구름 위를 달리듯이 달리거나 걷는다. 다리의 이름이 구름다리인 까닭을 생각하기도 하면서.


  사연 없는 사람이 없다. 아픔 없는 사람이 없다. 단지 극복하면서 살아가는 것뿐이다. 그런데 난 가끔 나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알 수 없는 궁금증에 휩싸이곤 한다. 빈농의 가정에서 '아들'을 못 낳은 걸 한스러워하는 것 이상으로 삶의 의욕마저 없었던 종갓집에서 살아야 했다. 어린 시절이 불행할 법도 한데 난 아름다웠다고 기억한다. 물론 힘들고 슬프고 감당이 안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렇지만 난 과연 나만 그렇게 힘들까? 누구나 그 정도는 다 힘들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이었고 십 대 말쯤엔 차라리 내가 어른들을 이해시키고 흥분을 가라앉히게 하고 뭐 그런 역할까지 하면서 지냈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난다. 나를 그렇게 만든 게 뭘까를 스스로 찾으려고 했었던 때도 있었다. 준 농부처럼 농사일도 많이 하고 그랬지만 그 짬짬이 동네 친구 언니 오빠들과 수많은 놀이 했고 아름다운 추억들도 많이 쌓았다. 그런 게 힘들었던 기억보다 더 크고 행복하게 자리하기 때문에 내 어린 시절은 아름다웠다고 기억하게 되는 건 아닌가 한다.


  없으면 먹고 싶은 것도 많아지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뜻대로 되는 건 없고 더 힘들게 하는 건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더 달라질 것도 같지 않고 이런 상황들을 많은 사람들이 마주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사람이면 시기와 모양과 형태가 다를 뿐이지 극복해야 할 것들을 마주하게 된다. 극복하려고 해도 끝이 보이지 않아서 또 좌절하기도 한다. 그러나 살아 있으면 극복된다. 시간의 문제지 끝은 분명히 있다. 뿐만 아니라 찰나 일지라도 웃을 일도 생긴다. 중요한 건 그 어떤 경우라도 살아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삶은 핑크색만으로도 순백의 색깔만으로도 된 것이 아니다. 힘들 때마다 나만 힘들어야 하는 것 같지만 '고통 총량의 법칙'이라는 신조어도 있는 것처럼 사람인 까닭에 극복해야 할 고통은 모두 있는 것이다. 고통을 잘 이겨내면서 짬짬이 스스로 행복한 일을 만들어서 내 시간이 더 행복한 기억으로 채워지도록 노력하면서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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