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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08. 2022

밤의 한가운데에서

눈물, 삶

  누군가의 눈물을 보면서 따라 울다가 밤의 한가운데에 우뚝 서있다. '나'를 찾기 위해 나섰던 발걸음이 '나는 엄마다.'를 확인하는 시간이 되어버린 아이 셋의 어떤 엄마를 보고 잠을 청할 수 없어 이렇게 눈가의 눈물을 닦고 있다. '엄마'는 원래 그렇다. 아이가 어릴수록 '나'는 없고 '엄마'만 있다. 둥지에 있는 아기새를 위해 끊임없이 모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새처럼 엄마는 영원히 아이와  탯줄이 연결되어 있다. 눈물로 고개를 들지 못한 그 엄마의 등을 다독여 주고 싶다.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그런 와중에 덜거덕거리고 덜거덕 거림이 익숙해지려는 순간 물 같았던 '나'는 모두 증발되어버리고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게 된다. 간혹 덜거덕거림을 이겨내지 못하고 남녀는 서로의 손을 놓아버리는 경우들도 있다. '이혼'이 그 결과물이다. '결혼 생활'을 잘 이끌어 간 사람들도 사실은 '이혼'을 한 번쯤은 생각해본다. 자식이 있는 사람은 '이혼'이란 카드를 사용할 선택권이 없다고 했지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살기 위해 '이혼'을 선택한 경우도 있으니 그들의 마음도 헤아릴 필요가 있다.


  이혼을 하고 새 삶을 살아보고자 짝을 찾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세 아이의 엄마인 그녀가 나를 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선택해준 사람의 손을 맞잡지 못하고 '고맙고, 감사하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런 그녀도 울고 그 남자도 울었다. 그 모습을 보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울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녀 자신보다 그녀를 선택한 그 남자 보다 그녀의 자녀들을 생각하면서 눈물로 마무리하고 말았다.


  세상에는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병마와 싸우면서 사는 사람들도 있고 다양한 아픔을 겪으면서 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어린 자식과 엄마가 헤어져 사는 건 정말 힘든 일일 것 같다. 살기 위해 '이혼'을 선택했겠지만 아이와 헤어져 살아야 하는 이혼 이후의 삶이 또 다른 지옥이니 차라리 이혼을 안 하고 아이와 함께 죽을 만큼 힘든 그 상황을 이겨나가는 게 답일 것 같다. '엄마'란 그런 존재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많이 힘들겠지만 '이혼'을 하더라도 '엄마'는 아이와 함께 살아야 할 것 같다. 눈물로 보내는 그 엄마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눈물로 이 밤을 채워버린 그녀는 날마다 날마다 얼마나 힘들까? 그리고 '엄마'이기에 그 아픔을 겪고 있는 그녀도 '부모'가 있을 것이다. 그런 그녀를 보고 그녀의 '부모'는 또 얼마나 힘들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종일관 눈물로 보내는 그녀를 보면서 보는 내내 안타까웠고 그녀의 고통의 크기가 눈에 보이는 듯하여 그 여운이 오래 남는다. 누구든 부모고 또 자식이다. 행복한 것도 중요하지만 서로 가슴 아프게 하지 말기를 바란다. 내가 갖은 감정을 상대도 다 가지고 있다. 그 감정을 다치게 하지 말고 위하며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평생 어떻게 살아갈지 그녀가 걱정이다. 부디 행복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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