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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10. 2022

목소리

엄마

  매미가 우는 것인지 노래를 하는 것인지 천하를 정복한 듯 세상에 없는 명가수라도 된 것처럼 끊임없이 목청을 높인다. 찌익~~~ 공기 중에 직선을 계속해서 그은 것처럼 소리를 뿜어내니 열 마리의 소리인지, 백 마리의 소리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매미야, 부탁이다. 제발 잠시라도 쉴 수는 없겠니?" 너무 시끄럽다는 생각에 귀마개를 찾게 된다. 요즘은 다양한 개인채널이 생겨나서 별의별 소리를 담아 구독자를 만족시키는 경우도 있는데 과연 매미 목소리도 찾아 듣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일부러 찾는 사람들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여름의 태양보다 내가 더 잘났다고 아주 호소력 짓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매미는. 시끄러운 건  사정이지. 

 

  세상 사람들 중에 본인이 어느 때가 되면 목소리가 안 나올 것이라고 상상해보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시력이나 청력이 나빠져서 못 보거나 못 듣는 경우는 가끔은 상상이라도 해봄직하다. 그러나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거라는 것은 누구라도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너무나 가까이서 일어나 버렸다. 뇌경색으로 우측 편마비가 되어버린 내 엄마가 목소리를 못 내게 되셨다. 언어 중추가 마비되어 팔 개월이 넘 지금까지 목소리를 못 내신다. 신생아가 "엄마" 또는 "아빠"라고 했다고 하는 것처럼 가끔은 "응"이라고 대답하셨다고 좋아하고 "나만 들은 게 아니지?" 하면서 서로에게 묻곤 한다. 그 정도로 엄마는 말씀을 못 하신다.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다.


  발굴단이 유적을 발견한 것처럼 세상에 또 이건 무슨 일인가? 엄마께서 쓰러지시기 전 1분 이상 말씀하셨던  녹음 파일을 발견했다. 엄마께 신발을 사서 보내드리기 위해 신발 사이즈를 묻고 답하며 통화했던 기록이 내 휴대전화의 녹음 파일이 되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내가 의도했던 녹음이 아니라 그런 파일이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다. 통화 중에 볼에 눌려서 녹음이 되어버렸던지 생생하게 녹음이 되어 있었다. 그리운 그 음성이 쩌렁쩌렁하게 퍼져나갔다. 사서 보내드릴 테니 치수를 말씀해달라는 간곡한 내 목소리와 됐다고 신발이고 옷이고 당신이 알아서 사겠다고 사양하시는 엄마의 음성이 박물관의 금관이나 금동불상 보다 더 귀하게 느껴질 줄이야!


  놀랍게도 소리를 내는 매미는 수컷 매미이고 암컷은 소리를 내지 않아서 벙어리매미라고 불린다고 한다. 또 오전에 우는 매미, 오후에 우는 매미, 종일 우는 매미가 따로 있다고 한다. 알에서 성충이 되는 기간이 약 7년의 기간이 걸린다고도 한다. 시끄럽다고 구박당하는 매미가 암컷은 소리도 못 내고 겨우 수컷만 소리를 낼 수 있다니! "울어라, 아니,, 노래해라. 마음껏 얼마든지." 태생이 그러하다니 매미의 일생이 참 드라마가 따로 없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에 엄마 음성이 담긴 녹음 파일을 열어서 들려드렸다. 생생한 당신의 목소리에 적이 놀라시는 모습이셨다. 들려드리고 또 들려드렸더니 얼굴에 생기가 생기는 듯 보였다. 치료 시간이 많이 길어서 우리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도 들려드리고 노래 끝에 당신이 칭찬하셨던 목소리도 함께 듣게 되니 상당히 좋아하시는 듯한 표정을 보이셨다. 당신의 목소리가 그리우실 우리 엄마, 얼마나 시원하게 말씀이 하고 싶으실까? 콧줄로 식사를 하시고 대소변도 가리지 못하시는 우리 엄마 신세가 되셨지만 엄마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 이 상황이 보고 있어도 믿을 수가 없고 믿고 싶지가 않다.                                                                                                                                                                                                                  살다 보면 수많은 일들이 일어난다고 들 한다. 그 많은 일들 중에 생과 사의 중간에 서 있지도 못하고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까?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살아 있는 사람들과 나란히 살 수도 없는 상황에 놓여있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까? '슬프다.', '속상하다.' 이렇게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어찌하란 말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렇게 '침묵'이란 상황에 놓이게 했나? 엄마의 선택도 아니고 신의 장난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이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읽어내야 할까? 말이라도 할 수 있으면 덜 서러울 것 같은 우리 엄마, 간절히 바란다. "응", "아니" 이 두 가지의 말씀이라도 하실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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