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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23. 2022

안다 한들 또 어쩌겠는가?

사람 사는 세상

  이런저런 이유로 읽고 싶었던 책을 만나지 못했다. 많이 기다렸는데 요행인지 내 손에 책이 들어왔다. 다를 때 같았으면 날밤을 세어서라도 책을 읽었을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내 품에 들어온 책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낯선 내 행동에 의문이 갈 뿐 책장이 넘겨지지 않았다. 그런 그 책을 두 달이 지난 오늘 읽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참 파란만장하다.'는 생각을 했다. 중간쯤 읽었는데 탁 덮으면서 깨알 같은 글씨들을 툭툭 털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염증에 시달리는 눈도 힘겨웠고 구구한 사연도 툭툭 털어내고 싶었다. 무엇을 위해 쓰고 또 읽는가? 잘 만난 책은 내게 긴 여운을 남긴다. 괜히 또 대면 대면해지기 전에 얼른 책을 펴야 할 텐데 삼천포로 빠지는 중이다.


  보슬보슬 비 오는 소리가 정겹다. 어제도 오늘도 톡방에서 수없이 쏟아졌던 글자들을 잊고 있었는데 배기통을 톡톡 두드리는 소리에 소란스러웠던 톡방 글자들이 생각나버렸다.


  여름이 두 번씩이나 지나가는 중인데 얼음 상태로 있었던 톡방에 용감하게 글자를 투척했다. 언젠가 '내 기쁨에 기뻐하지 않는 친구를 보았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 친구들이 함께한 톡방이었다. 오비이락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내 기쁜 소식 후 급랭하였던지라 난 그들의 무반응에 서운해했었고 그 급랭 상태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난 애초에 서운은 하였지만 그렇다고 그들이 친구가 아닌 건 아니라는 생각이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이런저런 톡톡톡으로 오해였다는 결론을 내렸고 오해라는 포장지 속에 어떤 속내가 있다한들 또 어쩌겠나 싶어 이렇게 일단락 내고 말았다.

 

  어제의 그 톡톡 거림이 오늘도 또 다른 톡방에서 톡톡 거리기 시작했다. 언젠가 언급한 적이 있었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오늘도 절절히 느꼈다. 한 뱃속에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너무 민낯을 들어내는 건 삼가야 된다는 걸 또 느꼈다. 너무나 민낯인 까닭에 나도 휩쓸리게 될 뻔했다. 랑은 직선이고 충고는 곡선일 필요가 있다는 말도 떠올랐다. 참 오묘하다. 어떻게 한 뱃속에서 태어났는데 그렇게 다를 수 있는지? 일란성쌍생아도 다르다고 하니 뭐 새로울 것도 없지만 한 뱃속이라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기대치가 있는 건 또 어쩔 수 없다. 쏟아지는 톡톡톡 속에 정신이 혼미해지지만 그래도 그나마 클라이맥스가 지나고 원만하게 마무리가 지어졌으니 천만다행한 일이다. 누가 되었든 알려고 한들 알아지지도 않거니와 또 안다 한들 어쩌겠나? 싶다.


  살다 보면 깨닫게 되는 게 있다. 껍질 속의 알맹이가 흰색인지 회색인지 흑색인지 은연중에 알게 되기도 하지만 꼭 알려고 들지 않고도 잘 살아진다는 걸 깨닫게 된다. 또 확인해서 뭐가 크게 바뀌지도 않는다는 걸 알기에 더 확인할 필요를 못 느낀다. 아무리 청소를 해도 어딘가의 흙속에 비닐이 묻히고 그 비닐도 오랜 세월 속에서 녹아 흙이 된다. 생활 속에서 생긴 감정의 폐수 같은 갈등과 앙금도 세월 속에 묻혀 언젠가는 깨끗하게 정화가 되는 날이 온다. 오늘 당장 급하게 해결하는 것만이 방법이 아니다는 말이다. 그리고 꼭 같을 필요도 없다. 다른 게 당연한 거다. 살아 있음에 소리가 나고 또 그걸 극복하려고 노력하곤 한다. 두꺼운 책 한 권이 무거워 보여 독자가 대신 글자를 털어주고 싶은 인생도 있다. 이런들 저런들 사노라면 다 살아진다. 흉터에 새살이 돋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듯 사람이면 누구나가 스스로 정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누구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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