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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24. 2022

잊기 전에 하고 싶은 말

부부, 사랑

  아이들에게 지금은 집 떠나 살고 있는 관계로 긴말이고 짧은 말이고 할 기회가 없다. 그런데 집을 떠나기 전에는 이런저런 많은 말들을 했었다. 그러고 보니 그다지 많은 말을 했다고 보기도 그렇다. 각자 바빴고 그놈의 대학이 뭐라고 죽기 살기로 '공부'에 온 마음을 다 바쳤으니 딱히 무슨 말을 많이 했었다고 하기도 그렇다. 지금이야 지내놓고 보니 무슨 일이 있었었나? 하는 생각까지 하곤 하지만 전쟁 같은 시간이었었다. 마음이 간절해서 더 그렇게 느꼈겠지만 물리적으로 같이 있을 시간이 그다지 많지가 않았다. 기숙사 생활들도 했었고.


  아이들이 어릴 적엔 마치 꿈결 같이 지나가버렸다. 그러다 학업에 정진해야 될 때가 되자 많은 걸 절제하며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렸다. 그렇게 한 방향을 향하기 전에 큰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모든 일과를 빠짐없이 내게 들려주곤 했었다. 엄마에게 무슨 말이 든 하고 싶어서 하루를 지냈었던 것처럼. 그러다 좀 자라서부터는 엄마인 내가 이런저런 시사적인 뉴스라든지 감동적인 얘기들을 접하면 마치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들려주곤 했었다. 말로는 다 표현하지 못했어도 행동을 보면서 아이들은 많은 이야기를 읽어 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특히 아이들 아빠는 훈화니 조언이니 그런 형식의 말들을 아이들에게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단지 없는 시간을 어떻게 서든지 만들어서까지 아이들과 함께 운동하고 놀아줬다. 그래서 아이들이 초등학교 다닐 때 둘째 친구가 셋째한테 "넌 참 좋은 형을 뒀구나."라고 했었다는 얘길 들은 후부터 우리 아이들에게 "너희들은 참 좋은 아빠를 뒀구나." 하며 웃곤 했었던 기억이 있다.


  부모가 자식의 거울이고 스승인 것을 알지만 살다 보면 그렇게 거울이나 스승이 될 만큼 완벽하게 살아지지만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최근에 한 방송에서 어느 부인이 한 말을 듣고 깊은 울림이 있어서 우리 아이들에게 잊지 않고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혹여 시간이 지나서 잊힐까 우려되어 이렇게 글로 남기려 한 것이다. 정말 묻는 사회자도 남편의 굴곡 많은 스캔들을 다 알고 있기에 어느 정도 답을 예상하며 그 부인에게 흔하디 흔한 질문을 했다. "혹시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그 부인의 대답은 "네."였다.


  평소에 마치 콩트처럼 남편의 일상을 희화화하곤 해서 누구나가 그러하듯 심하게 고개를 좌우로 저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의외였다. 그 부인의 부연설명은 외동인 자신을 이 세상 누구보다 부모님이 제일 사랑한다고 생각했단다. 그런데 그 남편은 그녀의 부모보다 더 자신을 사랑한다고 이 세상 그 누구보다 그는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다시 태어나도 지금의 남편과 다시 결혼할 거란다. 감동이었다.


  깊은 감동의 여운이 지금도 잔잔하게 느껴진다. 반짝하는 풋사랑도 아니고 결혼생활 삼십 년이 넘는 부부들이 서로 자신을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느낀다는 건 자신이 행복하기도 하겠지만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에 태어나 그 어떤 훌륭한 업적을 남기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배우자를 깊이 사랑하는 건 그야말로 '사람 인(人)'을 완성하는 일 같다. 간혹 배우자를 자신의 반쪽이라고도 하듯이 진정한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부디 우리 아이들도 배우자를 만나 깊이 사랑하는 삶을 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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