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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29. 2022

호박죽

119, 응급실, 호박죽

  세상에 이런 일이? 내게 이런 일이 있는 건 평생 처음이다. 우리 집에 119 차가 왔다. 119차를 타고 근처 병원 응급실엘 갔다. 내 생에 이런 일이 일어난 적도 없었지만 어제 아침만 같아도 너무나 멀쩡했기에 예측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런데 생사의 기로에 놓이게 되니 어쩔 수 없이 119차를 부르는 걸 수락하게 되었다. 50이 되기 전엔 건강검진을 제외하고 병원 가는 걸 거의 열 번 정도는 갔었나? 싶게 나의 병으로 병원 가는 게 드문 일이었다. 그런 내가 어제 119차를 타고 응급실엘 갔었다.


  어제는 일요일이라 시간 신경 쓰지 않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뒷산을 갔다. 먼저 텃밭에 가서 둘러보고 두 시간 정도 등산을 하고 집엘 올 계획으로 나섰다. 텃밭을 둘러보는데 호박넝쿨이 너무 무성하여 일부는 잘라서 퇴비더미에 모아두었다. 그렇게 호박넝쿨을 둘러보는데 호박 넝쿨만 무성하고 호박을 단 한 개도 구경도 못했는데 구석진 곳에 제법 보기 좋은 호박이 있었다. 호박을 보자 엄마에게 호박죽을 쒀서 갔다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나서 먼저 산을 오르는 운동부터 하고 집에 가는 길에 호박을 따서 가져가야겠다는 계획으로 두고 밭을 나왔다.


  등산을 마치고 하산하는 길에 밭에 들러 호박을 따서 집엘 오려고 하는데 먼저 거둬둔 호박 넝쿨의 호박잎이 너무 싱싱하고 좋아 보여서 몇 잎을 따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옆에 호박을 두고 앉았다. 그러자 호박이 숲이 우거진 경사진 곳을 데굴데굴 굴러 어디까지 가더니 멈췄다. 굴러가버린 호박을 그냥 두고 집엘 가는 건 말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숲이 우거진 경사진 곳을 내려갔다. 거의 절반 정도 내려갔는데 갑자기 벌떼 수백 마리가 내게 다가오면서 내 몸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에 벌떼를 쫓으면서 오던 길을 다시 올라갔다.


  얼굴이며 팔이며 벌이 쏘았다기보다 내 살점을 떼어간 것처럼 홈이 파였다. 너무 여러 군데 물려서 통증을 느꼈는데 그래도 굴러간 호박은 찾아가야겠기에 다른 방향으로 멀리 돌아서 아래쪽 호박이 있는 곳을 향했다. 10m쯤 갔을까 갑자기 빙빙 도는 어지럼증을 심하게 느껴서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한참을 주저앉아서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조금씩 호박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또 주저앉아서 쉬 고를 반복하다가 겨우 호박을 찾아서 또 가다 쉬다를 반복해서 겨우 집엘 도착했다. 집에 와서 온 몸을 살펴보니 온 몸이 두러기가 빠짐없이 났고, 발바닥은 시커멓게 변해있었고 정신은 혼미하고 이래저래 상태가 말이 아닌데 제일 무서운 건 의식이 끊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그래서 집에 혼자 있는 상태라 아랑 본가에 가있는 큰아이에게 전화를 걸어 상태를 설명하고 30분마다 전화를 내게 해달라고 했다.

 

  큰아이는 자기가 119구급차를 부를 거라고 오면 타고 응급실로 빨리 가라는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온몸에 자주 발진이 나서 먹으면 좋아지는 피부과 약이 있어서 한 알을 먹고 아무 진전이 없어서 또 한 알을 먹었기에 상태를 지켜보자고 했다. 그래도 계속 나를 설득시켰다. 그러더니 곧 119구급차가 집 앞으로 올 거니까 그걸 타고 응급실로 가라는 거다. 운동 뒤라 땀에 절여 있어서 몸도 몸이지만 정신줄이 끊길 것 같은 그 와중에 하는 수 없이 샤워를 하는데 우리 집 벨이 울렸다.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고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구급차를 탔다. 그런데 어떻게 할 수 없이 온몸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맥박을 제겠다는 분이 잠시만 멈춰 달라고 하는데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떨리는데 어쩔 수가 없다고 했다. 구급대원들은 각자 할 일을 하면서 차가 병원을 향하지 않기에 너무 떨리고 어지럽고 아픈데 왜 병원을 안 가느냐고 빨리 가달라고 했더니 받아주는 병원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집 근처 병원 응급을 찾게 되었다. 거기서도 피도 뽑고 맥박도 제고 주사도 놓고 해야 된다고 그만 좀 떨라고 하는 것이다.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는데 멈추고 싶은 건 누구보다 난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떨리는데 그 간호사는 그만 떨고 멈추라는 것이다. 그래 저 어찌어찌하다가 주사 덕분에 혼미했던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했다. 몸이 아프고 그런 건 다 견딜 만 한데 정신이 혼미하고 의식이 끊어질 것 같은 두려움은 많이 극복하기 힘들었다. '아,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피검사도 하고 액도 맞고 에피 톡신이란 주사제도 맞고 그렇게 누워있는데 남편이 나타났다. 한 시간 반 거리에서 응급실로 달려온 것이다. 큰아이와 같이 왔는데 한 사람만 들어올 수 있어서 남편만 들어온 것이다.


    119 구급대원들과 의사, 간호사께서 애써 주덕분에 어느 정도 진정이 되어 귀가하게 되었다. 집에 와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다시 발진이 확산되고 붓고 심한 통증이 왔다. 이런 상태로는 도저히 업무를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자 직장 상급자 세 분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병가를 내겠다고 허락을 받아서 원격 시스템을 이용하여 병가를 내고 오늘 이렇게 집에 있게 되었다. 을 먹고 조금씩 나아지고는 있는데 뒤통수가 무겁고 발진이 가려우면서 사라지지 않아서 걱정이다.


  지난주도 온몸에 두드러기가 계속 나서 수습하느라고 못 가봐서 계획으로는 오늘 엄마 병원에 엄마 드실 것과 간병하는 동생 반찬을 챙겨서 찾아갈 생각이었으나 못 가게 되어 내일이라도 찾아뵙기 위해 시나브로 호박죽도 쑤고 과일주스도 만들고 동생 줄 반찬도 만들고 있다. 음식을 목으로 넘기는 치료를 받으면서 겨우 드셨는데 입을 열지를 않는다기에 늙은 호박죽을 쒀서 드시게 한 적이 있기에 콧줄로 음식을 드시는데 다시 목으로 넘기는 훈련을 하신다기에 평소에 쒀다드린 영양죽 보다 호박죽이 좋을 것 같아서 호박을 보자 엄마 드릴 생각에 벌떼들과 사투를 벌이는 경험을 하게 된 것 같다.


  생과 사의 중간에 계신 엄마는 말씀도 못하시고 모든 게 정지상태에 가까운데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 마음보가 좁쌀만 해서 말이 씨가 된다고 입조심을 엄청하는 스타일인 내가 벌에 쏘여 정신줄이 끊길 것 같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자 겁 많은 나는 어디 가고 여기가 끝 이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었다. 죽음? 삶이 정지된 상태가 죽음인가? 벌침을 맞고 통이 밀통이 되었는지 죽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다니? 특별한 경험이었다. 건강한 사람들도 견디기 힘든 상황 앞에서는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우리 엄마는 어떨까? 누추한 당신의 상황에 슬픔 한 바가지를 가슴에 품고 연명하고 계실 것 같다. 생명, 죽음,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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