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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31. 2022

그래도 떠오르는 이가 있었다.

인연

  무시무시한 경험을 한 후라 선뜻 텃밭을 가지 못한다. 그런데도 새싹을 보았다. 텃밭이 주는 행복은 텃밭에서 수확하는 농작물보다 씨앗을 뿌리고 새싹이 돋고 성장하는 과정이 내겐 더 큰 행복이다. 그런 행복 텃밭을 가지 않고도 맛볼 수 있다니 새로운 기쁨이었다. 우리 집에서 새싹이 돋았다.


  얼마 전 마트에서 배추 무 대파 열무 씨앗을 샀다. 열무 씨앗은 텃밭에 뿌려놓았다. 작년부터 시작한 텃밭에 지난해 배추, 무 씨앗을 여러 번 뿌렸으나 제대로 수확을 하지 못했었다. 새싹은 나지만 비와 높은 기온 때문에 성장하지 못하고 죽곤 해서 능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다시 씨앗을 뿌리는 건 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물며 사다 심은 모종까지 오래가지 못하고 죽곤 하였으니 다시 엄두를 못 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또 씨앗을 보니까 사고 싶어 졌다. 소심하게 소포장된 씨앗을 사서 두고 보다가 검색을 해서 하우스에서 모종을 기르는 방법을 보고 집에 있는 계란판에 화분의 흙을 고르게 펴고 씨앗을 몇 개씩 심었었다. 그런 씨앗이 발아하기 시작한 것이다. 스프레이로 물을 주려고 갔더니 그새 새싹이 움트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고 황홀했다.

 

  벌에 쏘여 죽을 뻔 한 얘기를 아이들을 기르면서 알게 된 이웃에 사는 동네 친구에게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말벌에 쏘여서 친구 남편이 죽었었다고 했다. 오랫동안 믿기지가 않더라면서 다시는 텃밭엘 가지 말라는 것이다. 말끝에 응급실에서 보호자가 있어야 된다고 보호자가 빨리 오길 체근을 하니까 남편은 본가에서 오는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친구가 생각났었다고 했더니 연락하지 그랬냐며 자기도 그런 상황이 생기면 나를 불렀을 거라면서 같은 상황이 오면 꼭 자기를 부르라는 것이다. 눈물이 핑 돌게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런저런 상황들 앞에서 깊이 의지하고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끝이 어딘지 모르게 와르르 무너지는 실망감과 섭섭함을 느끼면서 '그래, 뭘 기대하니?, 본시 외로운 게 인생이야.'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곤 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래도 한줄기 빛처럼 따뜻함을 느끼게 한 친구가 있었다니 안도하게 된다.


  네가 어떠한 행동을 해도 난 너를 영원히 친구로 여길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바라보는 친구가 있다. 그런 마음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했기에 가능한 것 같다. 그렇게 생긴 그 마음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 어떤 불협화음이 일어나더라도 다시 한 몸처럼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한 뱃속에서 태어났다는 그 이유가 우리를 그렇게 만든다.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그 진한 관계임에도 내 어려움 앞에 선뜻 손을 내밀수가 없다. 참 이유를 알 수 없다. 어느 깊은 산속에 옹달샘이 차갑게 솟아나는 것처럼 그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속에 차가운 고독이 일 때가 있다. 눈을 꼭 감거나 침을 꿀꺽 삼키게 하는 일들을 경험하게 되면 그런 고독이 일고 내 손을 내밀 수 없게 만드는 것 같다.


  학연 지연 혈연도 아닌 관계로 만난 그 친구는 서로에게 그 어떠한 비밀도 없이 서로를 펼쳐 보이곤 한다. 속이 답답하거나 체한 것 같으면 약국을 찾듯이 우린 서로를 찾는다. 직접 만나거나 여의치 않으면 전화를 통해서 모든 것을 토해낸다. 그때마다 서로 시간 불문하고 들어주고 물으면 답해주면서 그런 시간들을 보내왔다. 어떨 땐 아주 어려서 겪었던 본인의 힘들었던 시간들도 내게 얘기하면서 극복하려고 했었던 때도 있었다. 살다 보면 그렇다. 뭘 크게 해 주거나 바라거나하여 해결되는 게 아니다. 그냥 들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주거나 말하지 않아도 내 옆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 그걸로 충분히 살 힘이 생긴다.


  뜻밖의 새싹을 집에서 바라볼 생각을 하니 내 마음이 설렘으로 가득하다. 새싹이 자라 떡잎이 네다섯 개가 되면 난 그들을 텃밭에 옮겨심기 위해 갈 것이다. 주변에 말벌이 있으니 조심조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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