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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18. 2022

설레는 그 마음

편지

  남녀가 서로를 생각하면 그냥 설레곤 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인 것 같다. 마치 아이가 태어나서 엎고 기고 걷고 하는 것처럼 서로 설레는 시간도 그것들과 비슷하게 일정 시간이 있다는 생각이다. 결혼이라는 제도권으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그 설레는 감정이 평생에 걸쳐서 자주 생길 수도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서로에게 '임자'가 되어버린 상황에서는 더는 설레지 않게 된다. 혹자는 "무슨 그런 말씀을?" 하면서 동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냥 사람에 따라 결혼을 하든 안 하든 젊든 늙든 자주 설레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걸로 하자.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설렘' 그 마음이 그립다. 사람에 대한 아니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설렘'을 갖고 싶다.


  평소에 운명론자이거나 그러지 않는데 도저히 다른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운명'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몇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는 어쩌면 의도된 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마저도 '운명'이 아니고서는 성사되기 힘든 일이라 '운명'이라고 이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좀 생뚱맞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 것도 '운명'인 것 같다. 인력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운명'이라고 이름하는 것 같다. '운명'이라는 것 중의 하나인 '결혼'을 하기까지 아름다운 설렘을 경험했었다. 어언 삼십  전의 일이라 내 기억의 편린들을 의심할 만 한데 그 '설렘'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증거물이 있다. 그건 다름 아닌 '편지'다.


 화가의 그림이든 작가의 작품이든 보는 이가 완성한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그랬다. 내 남편이 되기 전인 내 남자 친구가 보낸 편지를 글자 그대로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고무된 내 감정이 심한 촉매 역할을 해서 세상에 없는 아름다운 편지로 받아들였다. 잘 간직해둔 그 편지를 어쩌다 읽어보면 그때 내가 읽었던 그 편지가 맞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콩 꺼풀이 제대로 덮인 때였었던지 편지마저도 사랑의 콩 꺼풀이 덮여 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폈었다. 편지에 '지인에게 작은 배를 빌려 밤바다를 함께 노닐겠다.'라고 쓰인 글을 보면 나는 어느새 '달이 비치고 바람이 이는 바다 위를 작은 돛단배를 타고 둘이서 노니는 것'을 상상하였으니  쓰는 남자 친구보다 읽는 여자 친구인 내가 포장을 제대로 해서 받아였던 거다.


  어쩔 뻔했나 싶다. 지금까지 편지를 간직하지 않았었더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때의 그 맘을 의심할 수 있었는데 다행히 편지를 간직해서 그 아름다운 설렘이 넘실거리는 그 시간들을 증명해주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다. 편지는 풋풋하고 신선하면서 따뜻하기까지 한 누군가의 심장소리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려서 먼저 집을 떠나 객지 생활을 했던 언니들로부터 온 편지를 기다리면서 받아보고 기뻐했던 기억들. 작은 엄마를 일찍 여의고 그럼에도 늘 다정했던 군대 간 사촌 오빠에게 썼던 편지들. 지금도 고개를 살짝 옆으로 숙이며 입꼬리를 귀에 걸곤 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받았던 편지들. 내 영원한 솔메이트가 되어줄 것 같은 오래된 동생이 썼던 편지로 인해 그리운 그 친구를 찾게 되었던 고마운 그 편지. 때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꾹꾹 눌러쓴 우리 아이들의 편지들. 편지는 진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심장 박동 소리가 아닌가 한다.

 

  부쩍 늙어버린 나의 외모와는 달리 마음은 아직 설레고 싶다. 어딘가에 묻혀있을 내 과거 속의 설렘을 광석을 캐듯 캐내기라도 해서 그 심장 뛰었던 그 시절을 맛보고 싶다. 좀 짠할 수도 있는데 과거에 갖았던 내 설렘을 확인할 수 있는 게 아직 남아있어서 좋다. 한 때 설렘으로 두근거리게 해 줬던 젊은 시절의 내 남편에게도 고맙다는 생각을 해본다.  되돌릴 수는 없어도 추억할 수는 있어서 좋고 아름다운 내 젊은 날과 그때의 내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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