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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15. 2022

내가 사는 법-엄마, 죄송합니다.

나, 엄마

  종가에 딸만 넷 중 셋째로 태어나 언니들과 달리 난 나의 어린 시절을 아름다웠다고 생각하고 말한다. 어려운 환경이었음은 사실이었다. 그맘때 안 어려운 집이 없었다. 어쩌면 어려움 속에 끈끈한 정이 있었음을 느끼면서 살았기에 힘든 줄 몰랐는지도 모른다. 지금 시대에는 이해할 수 없는 늪 같은 묘한 안타까움이 있었다. 종가의 장남인 우리 아버지는 잘 살다가 집안의 시제나 그런 대사가 있으면 술의 힘을 빌어 아들 없음을 한탄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이곤 하셨다. 세월이 흘러 어쩔 수 없음을 인정할 만 한데 시간이 갈수록 더욱 짙어졌다. 

 

  문제는 어린 나는 나 홀로 난 아들 노릇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자랐다. 농가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모두 농사일을 거들었지만 난 나 홀로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논에 퇴비를 뿌리고 모를 심기 전에 물이 세는 걸 방지하는 논둑을 만드는 일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 일을 어린 여자 아이가 혼자 하는 경우는 없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난 참 우직한 소 같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스물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화를 냈던 기억이 없다.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위하는 길이 뭘까를 생각하다가 내 등록금을 안 내도 되게 장학금을 타야겠다는 생각으로 공부도 했었다. 내가 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었다.


  누구나가 각자의 소신이 있을 것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내가 처해있는 지금 현재에 1번이라고 생각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왔다. 어떻게 보면 멀티 시대에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학생 때는 학생으로서 최선을 다했고 직장인이 되어서는 '일에도 미쳐보리라.'는 마음으로 전력을 다했었다. 결혼을 하여 전업주부 생활을 이십여 년간 했었는데 그 또한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 학생, 직장인, 전업주부 그때마다 성과도 있었다. 결혼 전 직장생활을 할 땐 매년 최우수 사원 표창을 받았었으며 퇴직 시엔 직장 상사로부터 부모님께 감사드린다는 칭찬까지 받았으니 더 바랄 게 없었다.


  아이들을 기를 땐 뭐든 아이들과 함께 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까지는 아이들 옷을 모두 직접 손세탁을 했었고 아이들이 먹는 음식도 모두 수제로 만들어서 먹였다. 기본 식사뿐만 아니라 흔히 먹는 간식인 패스트푸드까지도 집에서 직접 만들어서 먹였었다. 아이들이 초등학생 때까지는 매번 직접 책을 읽어줬으며 중학생 때까지는 매일 아침 영어 받아쓰기를 했었다. 다른 공부도 늘 함께했었다. 기억나는 건 아이들이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올림피아드 수학 문제집을 아이들과 함께 경주하듯이 풀었었다. 아이들이 좋은 성과를 거두면 그때마다 남편은 "엄마 덕분이다."는 말을 하곤 했다.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심하게 열심인 엄마들을 만나곤 하여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부족한 점은 많았겠지만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열심히 살았다.


  요즘 심한 죄책감으로 마음이 편치 않다. 결혼해서 시부모님께도 원 없이 최선을 다했다. 내가 우리 부모님께 시부모님께 했던 것의 10%만 했었더라면 우리 동네에 효녀 비가 세워졌을 거라고 말할 정도로 시부모님께 성심을 다했다. 그런데 어릴 때 부모님 일손을 거든 것 빼고는 내 엄마께 자식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 내 삶의 계단 계단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면서 홀로 되신 내 엄마께는 딱히 해드린 게 없다. 병석에 눕기 전 엄마는 내게 "널 많이 믿고 의지했다."라고 말씀하셨지만 내게 자식이 태어나고부터 난 자식 키운다는 명목으로 내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 내 심신의 고향이고 내 안식처인 내 엄마를 위해 난 뭘 했나 싶다. 병석에 계신 지금도 선뜻 모셔온다거나 간병을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만 스럽다.


  내 삶을 주도적으로 성심성의껏 살아왔다고 자부하지만 스스로의 부족함 앞에서 스스로를 넘지 못하는 한계를 느낀다. 사랑하면 뭣하냐, 존경하면 뭣하냐 다 공허한 헛소리지 않느냐? 나를 자책할 수밖에 별 방법이 없다. 애처롭고 안쓰러운 내 엄마를 위해 난 뭘 할 수 있나? 그저 죄송한 마음뿐 별도리가 없다. 행동하지 못하는 난 비굴하고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이 허상인 것만 같다. 세상에서 가장 감사한 우리 엄마를 위해 최선을 다하지 못한 나는 뭔가? 진정한 사랑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하면서 난 왜 실천하지 못하는가? 막막한 마음을 달래려고 나 홀로 되뇐다. "엄마, 죄송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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