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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Sep 15. 2022

건너고 싶지 않은 강

관계

  어느 지인의 프로필에서 '오늘의 컨디션이 나의 인성이 된다.'라는 문구를 보았다. 잊히지 않는 문구다. 아니, 심하게 공감하는 중이다. 지능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받아들이고 생각하는 능력'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어디엔가는 '지적 적응 능력'이라고 되어 있었던 걸 보았다. 반면에 인성은 '사람의 성품'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성품은 '컨디션 조절 능력'이 곧 성품이 되고 그게 인성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나만의 해석을 해본다.


  살다 보면 아직 짙은 가을도 아닌데 낙엽이 되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이 있듯이 헤어지고 싶지 않은데 도저히 아닌 것 같아서 마음으로 누군가를 떨쳐내고 있는 경우가 생긴다. 사람의 본성은 양면성을 갖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선과 악이 내 몸속에 내 마음속에 공존한다. 선과 악 중에서 선을 자주 사용하고 악을 사용하지 않으면 악은 퇴화되어 선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닐까? 하는 나름의 개똥철학 같은 생각을 갖고 산다. 인성이 그날의 컨디션 조절의 결과로 만들어지듯이 선을 선택하는 것 그게 인성이고 인품이 아닐까 한다.


  슬픈 현실은 '사람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 생활 속에서 체험으로 얻은 진리 같은 말로 통용되고 있다. 이 말도 좋을 경우보다 안 좋을 경우를 경험하 떠오른다. 관계를 회복하고 싶으나 희망이 보이지 않고 스스로 두 손을 들 때 생각나는 말이기도 하다. '컨디션?' 적어도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본인의 '컨디션' 정도는 제어 조절이 가능해야 온전한 성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시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산다. 그런데 바르지 못한 인성으로 인해 애꿎은 상대만 상처를 받게 된다. 혼자 잘한다고 교통사고를 면하지 못하듯이 바르지 못한 인성이나 습관으로 피해를 보는 상대가 생다는 것이다.


  '선한 영향력?'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그냥 '보통의 삶'을 원한다. 그것만으로도 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살 수 있다. '과학'이란 이름으로 다양한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고 새로운 품종이 생겨나는 게 현실이다. 그런데 사람의 '인성'은 어떤 혼합물로 이루어졌기에 그리도 쉽게 변하지 않는 걸까?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해야 바람직한(?) 아니, 적어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인성을 가질 수 있을까? 어떤 자극과 어떤 노력이 필요한 걸까? 볕에 오래 노출되면 빛이 바래듯이 안 좋은 습관이나 성품도 세월 속에서 탈색이나 변색이 가능해질 수 있을까? 분명히 뜻이 있으면 길이 있을 것이다. 본인의 성품을 직시하고 개선하려고 하는 노력이 시작출발점인 것 같다.


  '분노 조절 장애'라는 용어가 있다. '장애'다. 본인의 컨디션을 조절하지 못하여 상대가 외면하고 싶어 지도록 하는 건 일종의 '장애'다. 인성이니 성격이니 그런 말로 두리뭉실하게 덮고 넘가선 답이 없다. 본인의 무덤이 될 수 있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면서 뭐 '장애' 없는 사람이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그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서 스스로의 상태를 인정하고 개선해 나가야 한다. 애매한 건 그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다. 딱히 '장애' 판정을 내릴 만큼의 상태가 아닌 것 같은 상태, 그게 문제다. 매일 그런 것도 아니고 간헐적으로 숨어 있던 본성이 표출되는 것, 그게 참 같이 사는 사람을 잡는 거다.


  평상시엔 다 좋은데 어떤 상황이 되면 낯선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 그런 행동을 드물게라도 반복되게 겪게 되면 어떨까? 오래 아주 오래 서로의 옆에 있었으면 하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는데 낯선 그 사람의 모습이 번민에 빠지게 한다. 본인도 노력해야겠지만 나도 그 사람을 위해서 어떻게 노력하면 낯선 모습이 출현하는 걸 막을 수 있을까? 무서운 건 '본성'이 아닐까? 하는 게 관건이다. 본인이든 그 누구든 노력으로 바뀔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건너고 싶지 않다. 비즈니스 관계가 아닌 제대로 된 따뜻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싶다. 그 방법을 알지 못하는 난 쉼 없이 그 길을 찾기 위해 없는 '사리'를 만들고 있다. 知天命? 나이만 배불리 먹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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