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Sep 23. 2022

두려움이 되어버린 침묵

소음, 정보

  나이 오십이 되던 해에 난 큰 병을 얻었다. 막내가 수능을 보던 해 건강검진을 받는 해였다. 막연히 걱정될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 수능이 끝날 무렵 건강검진을 받고 싶었고 미리 공가를 내어두었었다. 그런데 그해 수능 전날 포항 지진이 발생하여 수능이 일주일 정도 미뤄졌었다. 그래서 잡힌 공가 때문에 수능이 끝나기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었다. 검진 결과 우려스러운 징후가 발생하여 확인 절차를 밟아야 했고 큰 수술을 받았다. 그래서 그 계기로 '무병장수'가 나의 작은 목표가 되었다.


  요즘 들은 광고 카피에 '유병장수'란 말이 있었다. 별 의미 없이 들을 수도 있는데 '와~, 유병장수란다.' '유병?!''有病' 그 단어를 막쓰네, 그 상황이 얼마나 두려운 상황인데 백주대낮에 포탄을 던지듯 막 쓴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유병인 사람은 유병이란 사실을 잊고 살고 싶은데 누군가가 확인시켜주는 것만 같아 뜻하지 않게 듣게 된 유병이란 소리를 막아보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듣게 되는데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려서 불편하다. 쉬는 휴일에 온종일 이웃집에서 공사 중인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처럼 사는 동안 '유병'이란 것 같아서 '유병장수'란 말이 거슬린다.


  여명이 시작되기 전부터 깨어있을 땐 이 모든 시공간이 내 소유인 것만 같아서 좋다. 풀벌레 소리가 은은하게 퍼지긴 하지만 그마저도 나의 생존을 확인시켜주는 듯하여 싫지가 않다. 좀 과민하게 '유병'이란 단어를 느껴버리는데 어쩌면 고요 속의 풀벌레 소리처럼 생존의 확인 수준의 단어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며칠 전 특별할 것 까지는 없었는데 대낮에 뜻밖의 상황을 맞았었다. 한 시간여의 침묵이 나를 당황시켰다. 홀로 집에 있게 되었는데 삼 년에 한 번씩 하는 전기 정기 점검일이라며 아파트 전체를 정전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집안의 가전제품들이 모두 강제 휴면 상태가 되었다. 모든 것이 차단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넘쳤던 정보가 차단되어버리자 묘하게 방전된 기분이 들면서 우주 속의 분진처럼 나 스스로 아무 기능을 못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침묵을 감당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빨리 다시 원상태로 되기를 바랐다. 뜻밖의 상황을 맞으면서 생활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전기가 '나'를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과 그냥 오리지널 나를 나는 감당을 못한다는 생각, 모든 것이 단절된 침묵 속에서의 나를 만나는 건 계획된 무인도 생활이 아닌 강제적인 무인도 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침묵 속에 갇힌 나, 그거 의외의 두려움이다. 유병이란 단어가 스트레스로 다가오지만 내게 경각심을 갖게 하듯이 소음, 아니 생활 속에서의 소리는 이미 나를 점령했다. 병이 있지만 그저 진단을 받아 알고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이라고 합리화하면서 살아가듯이 우리는 소음이든 그 무엇이든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 요인 속에서 차라리 안정감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느 이름 모를 거리에서 낯선 이를 만난 것만큼 침묵 속에서의 나는 낯설고 또 낯설었다. 나만의 나를 내가 낯설어하면서 소음이든 정보든 차라리 넘칠지언정 준비되지 않는 나와의 조우는 피하고 싶어지는 건 무슨 조화인가 싶었다. 정보가 단절된 상황을 경험하면서 온전히 나를 찾아서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했다. 원시의 나로 돌아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각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문명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서 역으로 나를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 인터넷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생각, 내가 나를 찾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 이 생각 저 생각 아직은 생각할 수 있는 내가 조금은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안도한다.


  


  

작가의 이전글 구상만 하고 증발해버린 것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