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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Sep 30. 2022

읽기와 풀기

인생

  '국어를 잘하면 수학도 잘한다.' '독서력이 대학을 결정한다.' 등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런저런 말들을 듣고 산다. 그런데 요즘 누구의 특명이라도 받은 것처럼 나는 나를 읽고 있다. 나를 읽어 가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특별히 맺힌 것도 없고 원망스러운 것도 없는 나를 보면서 참 다행이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고 마음을 다친 경험이 없지만도 않지만 그때마다 어떻게든 풀려고 애썼기에 한이나 멍처럼 가슴에 맺혀있지는 않는 것 같다.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취향 덕분에 쉼 없이 라디오를 듣고 살았다. 가사를 하든 농사일을 하든 늘 라디오를 옆에 두고 들었던 아버지 덕을 봤다. 중학교 국어 시간에 새로운 낱말을 자주 질문을 받았는데 그때마다 거의 맞는 답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따로 예습을 하거나 그러지 않았는데도 거의 아는 낱말들이었다. 뒤늦게 알게 된 일인데 아마도 어릴 적부터 라디오를 들었던 덕분인 것 같다.


  많이 듣고 많이 알게 되면 쉽게 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어도 딱히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을 맞이했을 때도 그 상황을 얼른 파악하여 대처하는 능력도 입체적인 읽기가 아닌가 한다.


   그러고 보면 한 인간이 본인을 읽어 낼 때도 분명히 최소한 어느 한 곳이 불편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읽었으나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성향에 따라 좀 다르긴 하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어릴 적 성장과정 중에서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불편한 구석이 있어서 그걸 평생 안고 사는 경우들이 왕왕 있다. 특히 본인이 힘들었던 원인을 부모나 형제에게 있다고 생각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무겁게 안고 사는 경우가 있다. 상황이나 사안에 따라 다르겠지만 풀려고 노력하기보다 그냥 막연히 급하게 마침표를 찍어버려서 떠안고 사는 경우가 있다.


  육십이 넘은 자식이 구십을 바라보는 노모에게 본인에게 어릴 적에 왜 그러셨었냐고 따져 묻는 걸 보았었다. 손자까지 본 분이 당신의 늙은 어머니께 따져 물어야 했을까? 뜻밖의 모습을 보고 그간 존경했던 그분이 맞나? 하는 의문을 갖았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힘들었으면 돌아가시기 전에 듣고 싶었을 수도 있다. 모자간인데 더 빨리 물을 수 없었을까? 아니면 그간 그렇게 원망 섞인 질문을 계속하였는데 내가 그날 우연히 보았을까? 스스로 읽어 낼 수 없었고 이해하려 해도 이해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모진 세월을 사노라면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서 손가락을 자르고 그 위협을 모면하는 것처럼 자식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했는데 세월이 지나서 설명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 깊은 마음을 늦게라도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생을 마감하였을 수 있다.


  자식의 힘든 상황을 못 견디게 아파하면서 자식보다 더 고단한 생을 살아내신 우리들의 엄마가 계시다. 자식들은 어린 시절엔 숙명처럼 받아들이면서 잘 견디다가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어린 본인들을 애처로워하면서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고 싶고 누구라도 원망하고 싶어 지면서 그 대상을 불쌍한 엄마에게 돌린다. 우리네 엄마들은 그 모진 세월이 끝인 줄 알았는데 몸은 해방되었으나 마음이 다시 그 시절을 살아야 하는 비애를 겪는다. 그 험한 세월 속에서도 살았는데 살아있기에 그게 죄인지 마음 둘 곳을 찾을 수 없게 만든다. 자식들은 죄라면 시절이 죄이지 그 누구의 잘못이 아님을 빨리 깨우쳐서 본인도 힘든 시간 속에서 벗어나고 좋은 세상을 행복으로 채워 나가야 된다. 그게 모두를 위하는 길이다.


  어려운 문제일수록 풀면 기쁨이 더 크다. 누구라도 마음의 매듭이 있으면 되도록이면 빨리 풀어야 한다. 원인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이 세상 분이 아니면 스스로 이해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다.'라는 말은 진리인 것 같다. 용서가 안되면 본인이 힘을 길러서 그걸 밟고 일어서서 아무렇지 않게 잘 살면 된다. 확인해 보면 텅 빈 오해였을 수도 있다.


  세상사 오십 보 백보다. 고생 총량의 법칙이란 말이 있는 걸 보면 시간별 안배를 잘하는 지혜를 키우든지 정면으로 극복하든지 본인의 손에 달린 문제인 것 같다. 상황을 잘 읽어 내고 이해하면서 어려움이 닥치면 잘 풀어내는 게 인생인 것 같다. 중요한 건 모두가 쉽지 않다는 거다. 어쩌겠나 그렇게라도 위안을 삼고 살아내야 하는 게 인생인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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