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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Oct 04. 2022

나를 지키는 길

욕심

  만사가 다 그렇다. 무언가에 욕심을 갖고 달려들 때면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보이는 성취를 위한 움직임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성취와 스트레스는 동반된다. 일을 할 때나 인간관계를 맺을 때도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곤 한다. 일을 할 때는 그냥 열심히 할 일을 하면 그만인 것을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생길 때면 강한 스트레스가 동반된다. 인간관계도 의외로 스트레스가 호떡의 안고처럼 탁 달라붙곤 한다. 내면에 상대와 잘 지내고 싶은 욕심이 있을 때면 상대의 상식 밖의 행동까지 참아내야 하곤 한다. 따지고 보면 모두 내 마음속의 욕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예전부터 갈망하던 게 있다. 그게 뭐든 좋아하는 게 있어서 그걸 진정으로 즐기면서 초집중하고 그 최고봉에서 행복해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바람이었다. 아직 만나지 못한 그 무엇을 만나기도 전에 이런저런 세속적인 우려와 근심이 정신을 혼미하게 하곤 한다. 내 마음속의 적은 욕심이고 세상 속의 누적된 결과는 의심을 부르는 일들이다. 그 무엇이든 세상 속에 내어 놓으면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어 있고 그 시선의 끝엔 원하든 원하지 않든 평가를 받게 되어 있다. 그 결과로 마음을 다치는 걸 두려워한다. 물론 부인할 수 없는 건 좋은 평가를 받고자 하는 욕심이 그 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은둔 생활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시시때때로 형형색색의 다채로운 모습으로 온 마음을 꿈틀거리게 하는 대자연과 그 속에서 순수하게 투명하게 오직 나인 나를 마주하면서 살 수 있는데 굳이 무얼 더 바라며 불쑥불쑥 달려드는 상처를 마주하길 바라겠는가?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피하고 싶다고 다 피해지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알을 깨고 나온 첫 발자국부터 두려움과 아픔이 예견되어 있다. 그 전제는 '성장'이라는 것이다. 성장은 모험 용기 아픔 그 외의 다양한 많은 것들의 결과물이다. 다채로운 자연의 변화가 우리의 성장과정에도 있는 건가 보다. 그런 논리로 우리도 자연의 일부인 걸 확인할 수 있다.


  욕심과 의욕의 차이는 뭘까? 정도의 차이일까? 의욕적으로 무언가를 하고자 한다면 자연스럽게 깊은 어딘가에서 있던 욕심이 꿈틀거리게 되고 그 동력으로 의욕적인 행동이 연속적인 행동으로 이어갈 수 있게 되는 것 같은데 의욕은 긍정적인 의미로 욕심은 부정적인 의미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욕심 없이 의욕적으로 계속 무언가를 할 수 있느냐는 거다. 자신이 얻고자 하는 그걸 위해 열정적으로 하는 행동이 바로 '욕심'이 아닐까 싶다. 지나치면 욕심이고 적당하면 의욕이라는 걸까? 그런데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적당히 하면 무언가가 정말 완성될 수 있을까? 그 무엇이 무엇이든지 죽을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할 때 비로소 가시적인 성과를 확인할 수 있다. 어쩌면 의욕과 욕심은 한 몸이 아닐까 싶다. 연함과 짙음의 차이, 인간이면 갖게 되는 부정할 수 없는 마음이 둘 다 인 것 같다.


  날마다 연한 파스텔톤의 연속일 순 없다. 다소 현란한 여명을 마주하기도 하고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짙은 노을을 만나기도 하듯이 우리네 삶도 날마다 순수함만이 뚝뚝 떨어지는 아침 이슬이기만 할 수는 없고 다소 부정적인 '욕심'이라는 이름의 진함이 우리를 이어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자신을 병들게 하거나 스트레스로 날마다 잿빛이게만 하지 않는 수준의 완급 조절을 해가면서 살아내야 할 것 같다. 치열한 태양 아래서 꿋꿋이 버텨내면 은은한 달빛 아래서 한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이 기다린다. 내가 나를 지키려고 하는 마음을 갖고 살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지 않고 살아낼 수 있다. 선을 지키는 나를 격려 하면서 오늘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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