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Oct 04. 2022

그럼에도

조언, 잔소리

  잘생긴 건축물들, 각종 인프라 구축,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로 우리는 편리함을 누린다. 하지만 밀림을 달리다가 뜻하지 않는 늪을 만나듯이 빌딩 숲 사이에서 싱크홀들을 만난다.


  넘치는 정보 속에서 많은 것들을 배운다. 요즘은 특히 단편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아주 세부적인 방법까지 유튜브를 통해서 배운다. 폭풍 정보를 면대면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랜선으로 접하니까 생기는 폐단이 있다. 결과에 촟점을 맞춘 결과 일변도의 행동들이 그 문제점이다. 사람으로서 갖춰야 하는 절차나 예의가 실종되다. 마치 빌딩 숲에서 불쑥불쑥 나타나는 싱크홀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듯이.


  예전의 권위적인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 수많은 노력들을 해왔다. 그래서 많은 직업군들이 탈 권위적으로 변모하고 있고 특히 위계에 의해 위협하는 문화가 많이 개선되었다.


  요즘 시어머니들이 고된 시집살이를 극복하고 며느리를 맞이하여 뜻하지 않는 며느리살이를 겪고 있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모습들을 목격한다. 평등한 문화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구성원들이 관리자를 평가하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평가는 관리자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시절이 바뀌어서 쌍방향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목적하는 바 대로 직장 문화가 많이 개선되었다. 구성원들에게 평가받아야 하는 관리자들은 되도록이면 조언이든 잔소리든 삼가고 있다.


  사회생활 경험이 부족한 젊은이들이 직장 선배들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사라져 버렸다. 연수라는 객관화된 지식만 전달될 뿐 경륜에서 나오는 지혜를 접할 기회가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업무의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도심의 싱크홀 같은 현상들이 뻥뻥 터지고 있다.


  수용할 마음이 전제되면 조언이고 그렇지 않으면 잔소리라고 했던가? 잔소리는 나쁜 거고 조언은 더 나쁜 거라고 했던가? 수용할 마음이 있든 없든 나쁜 거라고 생각하든 말든 부모는 영혼을 다듬는 많은 말들을 자식들에게 한다. 때로는 말 대신 바디랭귀지로 행한다. 부모는 진한 사랑이 배어있는 '그럼에도'의 전법을 구사한다. 그렇게 겨우 인간다운 면모를 갖추게 된 후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직장의 선후배가 부모와 자식 같은 마음으로 직장문화가 형성되어 오다가 시대가 개벽을 해서 '평등'이라는 이름으로 각자도생 하는 사회로 변모한 것이다.  


  자식을 낳아 기르다 보면 모범 사례들이 눈에 보이게 된다. 아주 이상적인 사례는 뭐든 알아서 척척하는 자식이다. 또 다른 사례는 부모와 자식이 협업이 잘 이루어진 경우인데 자식이 부모 말을 맹신하고 잘 따르는 경우다.


  전제되어야 할 몇 가지가 있는 조언이나 잔소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랑이 깔려 있어야 하고 가능하면 짧아야 하고 자식이든 후배든 상대에게 예의를 갖춰야 하고 지사지의 마음으로 한다면 더 효과적일 거라는 생각이다.


  흐름을 살펴보면 애정 어린 조언이나 잔소리를 듣는 입장에서만 사절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굳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왜? 하는 입장에서도 비난을 감수하고 나서고 싶지 않아 한다. '입에 쓴 약이 몸에 달다.'라는 말처럼 다소 힘들더라도 감래 해야 된다는 것이다. 가능하면 젊은 나이에 배워야 한다. 쓴소리를 달게 받아서 잘 소화시켜서 새로운 생산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자잘한 아픔(조언이든 잔소리든)을 잘 참아내면 큰 아픔을 겪을 일이 줄어든다. 누구든 내 곁에 '그럼에도'를 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행운아다.


작가의 이전글 나를 지키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