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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Nov 11. 2022

스승은 늘 내 가까이에 있다.

자식, 부모, 교육

  맹모삼천지교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남 얘기가 아니라 우리 집 얘기다. 산수가 빼어나고 부족함이 없는 소도시에서 살았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엔 그림을 그리러 다니고 문화 행사가 있으면 봉사활동도 하고 나름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살았다. 그런데 큰아이가 중학생이 되자 남편은 대도시에서 아이들을 기르기를 원했다. 아이들 교육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남편의 뜻을 따랐다. 어느 일요일에 중학생인 큰아이와 아직 어린 초등 2, 3학년의 두 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이사하고자 하는 대도시로 탐방을 나섰다. 대도시 중에서도 남편의 직장 동료들이 많이 산다는 동네로 향했다. 그곳에 가서 초등학교를 찾았다. 아이들을 한 초등학교에서 놀게 하고 좀 있다가 다른 초등학교에서도 놀게 한 후 어느 초등학교엘 다니고 싶냐고 물었다. 아이들이 다니고 싶다는 학군에 집을 사서 바로 이사를 했다.


  지인들이 그 대도시에 많이 사는데도 저와 남편은 단 한 번도 정보를 얻으려고 묻지 않았었다. 주변 사람들은 어쩜 그럴 수 있을까 의아해했다. 살 곳을 정하면서 그것도 아이들 교육을 위해 이사를 하고자 하면서 아무런 정보를 취하려 하지 않는 우리 부부를 보고 눈을 동그렇게 뜨는 분들이 많았다. 그런데 놀라운 건 그 대도시 중에서 우리 아이들이 다니고자 하는 학교가 모두가 다니기를 원하는 선망의 학교라는 걸 학교를 다니면서 알게 되었다. 어떻게 그런 학교를 다닐 생각을 했냐고 걱정하는 분도 간혹 있었다. 그 학교는 학부모들이 너무 학구열이 높다는 이유에서였다. 주변의 걱정과는 다르게 우리 아이들도 학부모인 나도 아무런 불편함이나 어려움이 없었다. 그냥 목적에 충실했을 뿐 그 외의 모든 상황이나 현상에는 주목하지 않아서 편안하게 학교를 다녔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학교를 다니는 중에 부모의 역할이 제법 있었다. 방학이 끝나는 시점엔 교실 청소를 하러 갔어야 했고 공개수업이나 운동회 때도 참여해야 했었다. 그때마다 감탄을 하곤 했었다. 우리 아이들의 친구들의 언행이 너무나 멋지고 훌륭해서 흐뭇해했었던 적이 많았다. '서로에게 많은 배움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만복감을 느꼈었던 기억이 있다. 문난 학교였지만 다니는 중엔 그전에 다녔었던 소도시의 학교에 비해 아무런 특색이 없다고 느꼈다. 큰아이가 다녔던 소도시의 학교에서는 다양한 활기 넘치는 프로그램이 많았었다. 그런데 대도시라서인지 너무나 단조로웠었다. 괄목할 만한 건 공개수업 등을 참관하면 학생들이 너무나 빼어나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특정 학생만 탁월한 게 아니라 반 학생 모두가 눈부시게 빼어났었다. 특별한 스승이나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이 성장하는 게 아니라 친구들과 상호작용으로 멋지게 성장할 거라는 확신이 들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원격수업을 하다가 학교를 다니는 둘째와 오래간만에 통화를 했다. 이십 대인 둘째는 학교생활 학회활동 친구들 얘기를 살갑게 했다. 엄마의 직장생활에도 다채로운 얘깃거리가 있듯이 자기도 이런저런 일들이 있다고 얘기를 했다. '다름'을 마주하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들을 말하는데 아이의 마음이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저절로 입꼬리가 귀 쪽으로 향했다. 목소리를 낼 때는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이 사람이다는 말과 일란성쌍둥이도 다르다고 친구라고 다 같을 순 없다는 얘기들을 해주면서 못 먹고사는 사람 없다고 인간이란 단어 속엔 '정'이 있어야 인간이다고 좀 다르더라도 친구들과 정을 쌓아가라는 얘기를 해주면서 붉게 물든 단풍처럼 내 마음속으로 파고드는 둘째와의 대화에 세상을 다 갖은것 같은 행복감에 만면에 미소가 번다.


  아이가 멋진 친구들 사이에서 배우고 성장해가는 모습을 보면서 감사한 마음을 갖듯이 아이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주고 싶은 욕심을 갖는 건 엄마로서 당연한 욕심이겠거니 생각한다.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이사도 마다하지 않는 교육열을 우리는 서슴없이 행동으로 옮긴다. 그런데 스승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가장 오랜 시간을 교감하는 가족, 그중에서도 부모는 정말 가장 중요한 스승이다. 자식에게 부모는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진정한 사람이 되어가는 걸 배우는 건 많은 사교육비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냥 부모가 모범이 되면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을 목숨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을 느끼면 그걸로 한 세상 멋지게 살아낼 수 있다. 그건 누구도 아닌 부모가 자식을 향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귀한 자식일수록 엄히 대하라는 말도 상기시키면서 아낌없이 사랑하면 훌륭한 교육은 완성되는 게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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