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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Nov 16. 2022

로봇 청소기

사랑, 자식, 부모

  비 온 뒤 청량감이 최상위인 날 낙엽 쌓인 오솔길을 걸으면서 상념에 잠겼다. 바람결에 뒹구는 낙엽을 보면서 순간순간이 모두 선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봄에는 아카시아 꽃길이었던 그 길이 단풍으로 물들었다. 꽃향기에 내 몸이 녹아버릴 것만 같더니 이렇게 가을의 중심에 날 거닐게 한다. 살갗에 닿는 바람과 나무들의 변화를 보면서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연초록이 진초록이 되고 이내 붉게 물드는 걸 보면서만 시간을 느끼는 건 아니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더 절절하게 시간을 느낀다.


  며칠 후면 내 생일이다. 각각의 지역에서 각의 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온단다. 어젯밤 둘째가 전화를 했다. "엄마,  이번 주에 집에 갈게요. 뭐 필요한 게 있으니 좀 부탁드려요."

"그래? 무슨 일로 올 건데?"

"누나랑 동생도 온다고 하고 엄마 생신이니까요."

"아니, 그럴 것 없다. 네 마음은 받고 넌 거기에 있거라. 바쁜데 그 먼 곳에서 오지 마라."

그렇게 하여 둘째는 안 오기로 했다.


  오늘 아침엔 첫째가 "엄마, 오늘 엄마 선물이 도착할 거예요. 우리 셋이 준비한 거예요. 그렇게 아세요"라고 했다.

"뭔데?"

"비밀이에요."

퇴근 후 집에 가서 택배를 확인해보면 알 일이지만 내가 갖고 싶은 걸 벌써 선물했던 첫째가 또 셋이서 합작하여 준비한 선물을 사는데 합류했다고 하니 더 궁금해졌다. 끝내 참지 못하고 막내에게 전화를 해서 확인했다.

"로봇청소기예요. 언젠가 엄마가 엄청 사고 싶어 하셨었잖아요."

아주 오래전에 그랬었다. 그걸 막내는 기억하고 누나, 형에게 아이디어를 낸 것이다. 막내는 섬세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누구보다 엄마인 내게 관심과 애정이 많다. 누군가에게 엄마의 건강과 관련된 정보를 들으면 그걸 잊지 않고 구해서 슬그머니 안겨준다. 이번에도 정말 엄마를 생각해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겠지만 그래도 내가 갖고 싶어 하는 프라이팬이나 세탁기 건조기 냉장고 같은 가사에 도움이 되는 선물을 받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공부 중인  아이들이 엄마를 생각하며 준비한 거라 고맙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배시시 미소가 번진다.

 

  삶이 그렇게 엄청난 게 아니다. 날마다 그날이 그날 같다가도 서로 '난 널 사랑하고 있어'라는 마음을 전하면서 사는 게 삶이다. 얼마 전에 우리 둘째가 이런저런 자신의 일상을 들려주고 살갑게 다가와 줘서 그 마음이 고마웠다. 그때도 산책로를 거닐면서 '감사하다. 내게 끊임없이 사랑을 샘솟게 해서 정말 감사하다.'라는 생각을 하고 또 했었다. 부모란 자식에게 끊임없이 줘도 또 주고 싶은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자식도 부모 마음 못지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약이다. 시간 앞에 장사 없다. 시간과 관련된 이런저런 말들이 있지만 그런 말들을 순간순간 절감하게 된다. '끝이 있기는 할까?'라는 생각을 가끔씩 했었다. 아이들의 나이가 한 자리 숫자일 땐 육아가. 그 후로 사춘기 또 입시를 향한 전쟁, 그 과정을 겪으면서 긴장과 초집중을 했었던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시간이 약이었다는 생각을 고 있다. 그에 반해 챙김을 당하는 입장인 것 같은 생각이 들면서 '아, 내가 그럴 나이가 되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시간 앞에 장사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시간의 흐름 사이사이에 사랑이 흐르고 있다는 체감을 하면서 따뜻한 내 심장의 온도 느낀다. 지금 이 순간 참을 수 없는 한 마디를 한다.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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