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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Dec 08. 2022

빈집

엄마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했던 때가 있었다. 엄마에게는 조금 죄송하지만 엄마보다 내 고향의 풍경이 계절 계절마다 얼마나 자세하게 떠오르고 그립던지 말로 다 형언하기 힘들었다. 초록으로 뒤덮인 앞뜰엔 아침이면 거미줄에 침이슬이 은구슬이 되어 매달려 있었고 개구리는 목청껏 천하를 호령했으며 쪽빛 밤하늘에 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빛났었다.


  자연의 속삭임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았던 내 고향이 내게 가장 큰 선물이다. 태어나 보니 그곳이 내 고향이었다. 내 심장이 박동하듯 내 몸속엔 내 고향의 숨결이 박동하고 있다. 봄이면 뒷산이 온통 분홍 진달래로 꽃다발이 된다. 동네 앞 개천은 아침이면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어느 곳에 있어도 선명하게 기억되지만 그래도 가끔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었다. 그립고 또 그리웠다.


  내 고향은 우리 엄마의 고향이기도 하다. 우리 엄마는 같은 동네에 사는 우리 아버지와 결혼하셨다. 내 그리움은 그리움도 아닐지 모른다. 구십 년이 다 되도록 사셨던 곳인데 대적할 사람이 없을게다. 당신도 나서 자랐고 자식도 낳아서 길렀고 동네분들도 모두 한 가족 같을 텐데 얼마나 그리우실까?


  전신이 거동할 수 없게 되고 눈만 말똥말똥하고 의식은 명료한데 가보고 싶다고 말씀도 못하시고 병원 살이 만 1년이 되었다. 그 누가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뇌경색에 전신이 마비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고 말씀까지 못하시게 될 줄을.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나라면 1년 전까지 평생을 살았던 그곳엘 가고 싶을 것 같다.


  엄마 없는 빈집은 집은 여전히 그곳에 있는데 명절이면 갈 곳이 없게 되어 버렸다. 강 건너 앞 마을 산에 아버지 산소가 있다. 돌아가신 지 근 사십 년이 되어가는데 차라리 아버지 산소가 더 정겹다. 고작 1년밖에 되지 않은 빈집 신세가 그렇게 황량하게 느껴질지는 몰랐다.


  주인 잃은 빈집은 명절도 없고 제사도 없는 이야기가 없는 집이 되어버렸다. 고작 1년 전만 해도 가족들이 앉을자리가 부족하도록 북적였는데 이제 그곳에 온기가 돌 일이 있을까? 그곳에 다시 옹기종기 앉아서 식사하고 몸 부딪히면서 누울 일이 있을까? 세월이 무섭다. 모든 것을  앗아가 버리는 걸 이렇게 보게 될 줄 몰랐다.


  가끔 엄마를 움직이는 나의 고향이라고 했었다. 몸과 마음이 분리가 된 것처럼 고향땅과 우리 엄마가 분리가 돼버렸다. 그래서 빈집에 마음을 둘 수도 없고 병석에 계신 우리 엄마에게 고향이 다느니 뭐 그런 말을 할 수가 없다. 그저 초겨울 바람이 한겨울 바람 이상으로 차갑게 느껴질 뿐이다.


  엄마의 바람이기도 할 것 같고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언제 돌아가실지 모르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우리 엄마이지만 고향집에서 얼마간이라도 사셨으면 좋겠다. 햇살 좋은 날이면 휠체어라도 타고 동네 한 바퀴도 하고 당신이 애지중지했던 논도 둘러보고 원 없이 그곳 공기도 마시면서 사셨으면 좋겠다.


  벌초하고 다녀오실 땐 머루를 그득히 따오셔서 마당에 펼쳐두시고 우리들을 불러 모으셨던 아버지, 돼지가 새끼를 낳아 돼지 축사에 그득하고 그 위에 토끼집이 있어서 토끼들이 뛰놀고 염소 개 고양이 오리 닭들이 마당 언저리 한 자리씩 차지하고 북적북적 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빈집이 된 우리 집은 한파를 잘 버텨야 할 텐데 하면서 수도며 보일러가 터질까 봐 걱정이 된다. 부디 잘 버텨서 봄이 되면 반갑게 우리 엄마를 맞아주길 부탁한다. 내게 선물이 되어주었던 내 고향에게 부탁한다. 우리 엄마 살아계실 때 그곳에 단 하루라도 머물 수 있게 허락해다오. 우리 엄마를 포근히 품어줄 그날이 오길 기다려다오.  부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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