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Dec 22. 2022

내 나이 오십 대

나, 나이

   知天命이라?

나이 오십이 되면 하늘의 뜻을 안다고?

글쎄?

진짜?

나만 모르나?


  하늘의 뜻은 고사하고 가까운 사람들의 뜻도 잘 모르겠다.

그뿐이겠는가?

하물며  내 속도 잘 모를 때가 있다.


  그런데 늙어가면서 몇 가지 깨닫는 건 있다.

그건 내가 젊었을 때 보고 깜짝 놀랐던 것들을 지금 내가 하고 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고 이해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제 와서야 이해하게 되었고 닮고 싶지 않은 그것들을 내가 하고 있다. 그렇게 행동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버렸다.

늙었다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러고 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힘에 부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그리고 살아보니 그런들 그렇지 않다한들 큰일 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버렸다.


  요즘 들어 또 하나 이해되지 않았던 말을 공감하기 시작했다.

'적당한 스트레스도 약이 된다.'는 말을 약간은 공감하기 시작했다.

과하지 않아서인지, 적당하다는 기준이 뭔지는 모호하지만 여하 간에 그 무서운 스트레스를 앞에 맞이하면서 나와의 거리를 완급 조절 하기 시작했다.


  직장에서 고집불통을 만나 수많은 배경 설명을 해도 도저히 그 벽을 뚫지 못하는 경우가 될지라도 예전처럼 나를 힘들게 하거나 스트레스에 몸서리치지 않는다.

그게 그분의 문제라고 분리를 시키게 되었다.

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않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객관화된 시선을 갖게 되고 과도하게 내 문제요 내 스트레스라고 받아들이지 않게 되었다.

문제는 문제라 스트레스가 제로일 수는 없지만 예전처럼 내 몸과 생각 그리고 마음을 힘들게 내 스스로 키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빨리 이해시키고 빨리 편안해지려는 욕심을 버리니까 저절로 시간이 그 문제를 당사자에게 자각시키고 깨우치게 해 준다는 걸 보게 되었다.

문제의 생성, 발전, 마무리까지 그 과정을 한 발 뒤에서 지켜보기도 하는 차분함을 갖게 되었다.


  지난주엔 용광로처럼 문제가 최고조에 달했었다.

학창 시절 한 때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런 과정이 계속되자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자타공인 어른이 되었는데 그 어린 시절 때처럼 지난주는 직장에서 한 주 내내 문제가 생기고 해결되면 또 생기고 했었다. 주말을 맞이하는 퇴근길에 모든 게 일단락되자 날아갈 것 같은 기분으로 퇴근을 했었다. 이번 주를 잘 보내다가 주말을 코 앞에 두고 다른 일을 해야 돼서 지난주의 결과물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새롭게 문제 되는 걸 발견하게 되었다. 중요한 문제이고 큰 문제 이긴 하지만 더 큰 문제가 되기 전에 발견해서 바로잡을 수 있는 지금이 다행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관련 일을 하는 분께 해결 방법을 충분히 설명하고 왔으니까 잘 해결되겠지만 또 철벽을 칠 수도 있는 상황이라 걱정도 된다.


  이런저런 걱정과 스트레스가 살아 있음의 징표라는 생각을 한다.

다소 오해와 갈등이 있겠지만 그 또한 풀리기 위한 매듭이라는 시선으로 해석한다.

이게 나이의 힘이 아닌가 싶다.


  내 나이 오십 대,

식욕은 살아 있는데 소비가 잘 안 돼서 나잇살이 무한대로 찌는 것 빼곤 다 좋다.

굳이 知天命이라는 말에 부합하지 않아도 좋다.

나잇살에 걸맞은 여유가 생겼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마음의 평화가 자리 잡았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여유롭고 평화롭다는 지금을 지내면서 과거로 되돌리고 싶기보다 내일이 기대된다.

목적지에 안전하게 착륙한 여객기 같다.

나의 오십 대는.



  

작가의 이전글 나의 친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