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Dec 20. 2022

나의 친구

친구

  오십 대 중반의 내가 생각하는 친구란? 내 말을 기꺼이 들어주는 사람이 친구다. 더 나이 들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 이 나이의 친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말을 기꺼이 들어주는 사람이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하는 게 을까요? 하지 않는 게 나을까요?"라고 질문을 하곤 한다. 그때마다 "글쎄?"라고 모호하게 답하곤 했다. 그러다가 최근에야 그래도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 큰아이가 물을 땐 지체 없이 하는 게 낫다고 했었다. 이유인즉 아이들을 낳았다는 것 때문이었다. 물론 그 말도 솔직한 답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을 낳은 것 빼고 딱히 답하기가 모호했었다. 그런데 남편과 둘이서 김장을 하다가 '결혼은 하는 게 맞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혼이란? 영원한 친구를 만드는 과정'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내 남편이 내 영원한 친구였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다.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이 親舊다. 순전히 사전적 의미의 그 친구가 친구이려니 생각하여 어릴 적 학교를 같이 다니고 오래전에 알았던 이들이 친구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최근에야 하게 되었다.  오래 사귀었다고 하기도 좀 모호하다. 오래전에 알고 지냈지 오래도록 사귀었던 게 아닌데 그들을 모두 친구라고 명명했었다. 몇십 년을 모르는 남처럼 지냈는데 어릴 적 학교를 같이 다녔다고 친구라고 한다. 오래도록 안 봤어도 어릴 적 학교를 같이 다녔던 친구들은 혈연은 아닌데 혈연 같은 끈끈한 유대감을 갖게 되는 건 있다. 그래서 그들을 친구라고 하는가? 싶기도 하다.


    내겐 근 십 년을 매달 같이 밥 먹는 두 명의 동네 친구가 있다. 그분들은 한 두 살 손 윗분 들이다. 흉허물 없이 수다를 반찬삼아 밥을 같이 먹는 분들인데 그분들과는 백년해로(^^)를 약속한 사이다. 또 다른 한 명의 동네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허허벌판에 신문고가 있다면 그걸 한없이 치고 싶을 때 의례히 나를 찾는 분이다. 서로의 말를 깊이 공감하면서 서로의 체증을 소시켜주는 그런 친구다. 또 직종은 다르지만 직장이 같은 두 친구는 그들로 인해 직장이 가고 싶은 곳이 될 정도의 위력이 있는 친구다. 직장은 다르지만 직종이 같아서 서로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가정사까지 공유하면서 막역하게 지내는 친구가 세명 있다.  


  내 마음대로 나 혼자서 그녀가 내 '친구'다고 깨닫게 된 친구가 있다. 전임지에서도 같이 근무했던 나 보다 십 년도 더 어린 타 부서에 근무하는 직장 동료가 있다. 그 친구에게 늘 사랑방 역할을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곤 했다. 상담의 기본은 내담자의 말을 들어주는 거라고 들었다. 상담사도 아닌 그 친구는 그냥 늘 들어줬다. 직장에서 풀기 힘든 난감한 상황이 생기면 그녀에게 의논하곤 했다. 그냥 들어주기만 한 게 아니라 정곡을 찌르는 해결의 실마리가 될만한 말을 해줄 때도 있어서 더 찾곤 했다. 처마 밑의 돌도 아니면서 천 번 만 번쯤 말을 해야 들을까 싶은 철벽 같은 사람을 만나서 속상하다고 하면서 내 제안이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었다. 그녀 선에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사안인데 타 부서인 그녀는 그녀의 부서장에게 말을 해서 그 부서장이 그 철벽인 분께 그 제안의 필요성을 말했다고 했다. 결론은 그 철벽인 분이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행복함을 느꼈다. 내 말을 본인 상사에게까지 말을 해서 해결해주려고 했던 그 마음이 너무나 고마워서 그 여운을 이렇게 되뇌고 있다. 그녀는 내 말을 진정으로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그녀는 내 친구다.


  황량한 사막 위의 짝 마른나무 한 그루도 아닌 사람으로 산다는 건 사막을 걷게 될지라도 힘겹지 않게 서로의 말에 귀기우려주는 친구가 있어서 살아진다. 가끔 산다는 게 버티고 또 버티는 게 산다는 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 혼자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人자는 그렇게 서로 기대면서 버티고 있나 보다. 내 말을 들어주는 고마운 분들 덕분에 난 오늘도 씩씩하게 살고 있다. 나도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사람人의 한쪽(친구)이 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인정 욕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