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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Dec 27. 2022

오늘은 침묵이다.

침묵, 마음

  역대급 눈이 내린 후 며칠째다.

북극 근처의 어느 나라처럼 눈은 내리지 않지만 눈이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다.

점심을 먹고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늘 걷던 동선을 돌아 자리에 앉았다.

봄에 언 땅이 깨어나듯이 들릴 듯 말듯한 눈 녹는 소리가 들린다.


  언 땅을 조심조심 걸어 10분 거리의 직장을 오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오늘은 침묵이다.

혹여 그 다짐이 눈 녹듯이 녹아내릴까 봐서 이렇게 내 다짐을 되뇐다.


  왜, 나는 침묵을 다짐하고 있는가?


  출근길이 가볍고 직장생활이 즐거웠다.

어제도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출근한 후의 문제다.

예상치 않던 업무 핑풍의 메시지를 받았다.

견딜만했고 잘 견뎌냈다고 호언까지 하면서 이겨냈다.

지난주에 원하는 대로 다 해줬기 때문에 한 주의 시작인 어제는 별일 없을 줄 알았다.

주 업무를 열심히 하고 있는데 또 예상치 않던 업무 전가 메시지가 왔다.

싫었다.

'너무한다.' 싶었다.

퇴근시간을 넘었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한참 후에야 저벅저벅 집을 향했다.

그냥 울고 싶었다.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스트레스를 이겨보려고 멍 때리고 싶었으나 내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다.

그렇게 새벽까지 잠못이루다 선잠을 조금 자고 아침을 맞았다.


  새로 맞은 오늘에게 다짐했다.

침묵하겠다고.

출근하여 컴퓨터를 켰다.

사내 메시지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어제 받은 메시지로 너무 힘들었던 주인을 위한 배려인가?

동료는 된다는데 내 컴퓨터의 사내 메시지 기능만 정지 상태였다.

'세상에?'

내 침묵을 이렇게 협조한다.^^


  고독, 외로움, 침묵,,

진즉 그 이름들이 눈, 코, 입처럼 나의 일부라는 걸 알았다.

 그것들과 공생관계라기보다 이미 그것들이 나의 일부라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힘들다.


  아직도 나는 '좋은 관계', '좋은 사람'에 대한 욕심이 있다.

놓고 살만도 한데 놓고 산다고 하면서도 그걸 놓지 못한다.

그 '좋은'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기를 기대하면서 '침묵'을 다짐하고 있다.

'침묵'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게 싫지만 먼 훗날 더 나이가 깊어지면 그래도 지금이 그리울 수도 있다.

역동하는 지금이 생동감 있는 삶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우연 치고는 정말 기묘하기 이를 데 없지만 좋다.

나의 침묵을 실천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계의 현상에 잠자던 미소가 일어난다.

적어도 오늘은 다운된 메시지 기능을 소생시키려고 애쓰지 않겠다.

오늘의 침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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