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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an 09. 2023

대동소이와 천태만상

글쓰기, 외로움

  불특정 다수가 읽을 수 있는 곳에 글을 쓴다는 건 상당히 두려운 일이다. 가끔 대중목욕탕을 가듯 그렇게 그냥 두려움도 뒤로한 채 옷을 벗는 거 이상으로 마음을 내보이며 자판을 두드린다.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혹여 피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도 하면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지도 모르는 내 가벼움의 흔적들을 이렇게 무모하게 새긴다.

 

  '허영심?', '용기?'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일기를 쓰면 될 것을 왜 책을 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모르긴 몰라도 부인할 수 없는 건 지적 허영심이 강력하게 손끝을 움직이게 하는 걸 거다.

 

    한 번 해보지도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이 생각 저 생각 이 걱정 저 걱정으로 새끼 꼬듯 날밤을 밝히는 것보다는 그래도 못난 글이라도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으로 이렇게 쓴다.


  눈코입 있고 밥 먹고 자고 싸고 그래, 뭐 그리 다르겠냐? 사는 거 대동소이하지 않겠냐?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 면죄부라도 주는 것처럼 못 난 글까지도 허용적이다. 일용할 양식으로만 살아 내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스스로에게 관대하기에 목숨을 연명하고 있는 걸 거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슬로건이 있다. 백번 맞는 말이다. 건강한 신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운동과 식생활을 잘 조절하면 가능해진다. 반면에 건강한 정신을 만들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모든 게 본인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밥을 먹을까, 죽을 먹을까, 면을 먹을까, 빵을 먹을까 별거 아닐 거라고 생각하는 먹는 거 하나도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 결국은 본인의 선택으로 결정된다.


  그런데 내 몸에 깃든 내 정신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생각할수록 미묘하다. 감정은 정신에서 파생되는 건지, 요동치는 감정의 결과물이 정신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놈의 감정이 기기묘묘한 다양한 군상들을 만들어낸다.


  인간은 대동소이하지만 않다. 갖은 이유로 천태만상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가만히 지켜보면 어릴 적 부모형제와의 애착형성과정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이 그 사람의 일생이 되기도 하고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는 채 방황하는 게 일생인 경우가 있다.


  삼십 대 초에 '裸木'이란 시를 썼다. 이십 년이 훌쩍 지난 오십 대 중반의 나는 답안지 같은 그 시의 글자를 하나하나 밟듯이 살아간다. 시골 오일장터 같던 시간들을 지나고 나서 헐벗은 裸木이 되어 외로움만 헤아리고 있다.


  모를 일이다. 그렇게 갈급하던 그 모든 것들이 이렇게 찾아올 외로움을 알고 있었던 것만 같다. 살아낸 경력으로 하다 하다 '외로움'과 친구 먹자고 덤빈다. 깨우치고 싶지 않다. 인생은 혼자라는 걸. 부인하는 나는 이미 내 곁을 내준다. 외로움이 나의 동무라는 걸 알기에. 알고 보면 외로움의 실체도 나고 나의 영원한 친구도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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