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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Feb 23. 2023

간절함의 결과인가, 우연이었을까?

실천, 응답

  서서히 최저기온이 영상으로 변화되고 새싹들도 흙을 간지럽히고 있는 계절이 돌아왔다. 어디선가 다가오고 있는 봄기운 때문인지 아침이 날마다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계절의 변화는 권태로움을 쫓는 아주 고마운 현상이다. 오늘 아침에도 벌써 피어있는 매화는 수줍게 인사한다.


  언젠가 말했다. 사랑은 들어주는 거라고 생각한다고. 들어주는 거 그것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기 쉽다. 들어주는 거 그것은 외로움을 쫓아내 주고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도 살아보고 싶게 만든다. 나이가 들면서 이런저런 일들을 마주하게 되고 그때마다 겉모습이 아닌 참모습을 확인할 일들이 생긴다.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 그럼 그렇게 하렴.' 몰랐던 민낯을 굳이 안 볼 수 있으면 좋은데 맘처럼 또 그렇게 되지 않는다.


  간절함이었을까? 세상에 태어나서 나란 사람이 이런 일을 할 거라고는 나도 몰랐다. 지난 일인데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또 없을 것이다. 엄마가 코로나19 3차 접종을 마치고 다음날 좌측 뇌경색으로 우측이 마비되고 언어능력도 정지되었다.


  병석에 계신 지 3개월쯤인가에 방법을 찾다가 '국민청원'이란 문을 노크하게 되었다. '중증환자를 위한 집중치료실 운영 확대 및 코로나19 백신 접종 후유장애에 대한 실질적 지원 요청'이란 제목으로 글을 올렸다. 같은 병실의 유사한 환자의 보호자들도 다양한 방법을 찾았으나 선례가 없고 의학적 근거 미흡, 인과관계 부족 등의 이유로 헛수고라는 말을 쏟아냈다. '그래, 안되는구나.' 시도해보지도 못하고 끝이 났었다.


  그러다가 이 일과 무관한 내 직장 직군의 단체와 관련된 국민청원 글이 올려졌으니 확인하고 동의를 표하라는 안내를 받았다. 오, 그래. 이런 방법이 있구나. 내 의견이 수렴되고 안 되고는 나의 영역이 아니니 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 관에서 하는 일은 절차가 복잡해서 우리 엄마가 수혜자는 되지 못하더라도 같은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해서 어렵게 마음을 먹고 행동으로 옮겼다.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그 이후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도 못하고 잊고 지냈다. 이 청원의 취지는 갑작스럽게 겪게 되는 환자, 보호자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이다. 병원비도 감당이 어려운데 간병비가 더 감당이 안된다. 그래서 집중치료실이란 게 4일 정도 환자에게 제공되는데 간병인 없이 병원 의료진의 돌봄으로 해결된다. 그 서비스를 4일이 아니라 병원을 이용하는 내내 이용할 수 있는 제도적 보완을 해달라는 거였다. 물론 코로나 19 후유장애에 대한 국가적 보호가 필요한 부분과 함께 건의했었다.


  잊고 지내다가 병원생활 1년이 되어 이런저런 사유로 병실을 옮기고 그랬는데 그 병원에서 새로운 시범사업이 간병인, 보호자 없이 중증환자를 병원 의료진의 힘으로 운영되는 병실이 있어서 그곳을 이용하게 되어 보호자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국민청원에 낸 집중치료실 확대 운영과 내용이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시작이 어떻게 되었든 현장에서 시행되는 것 자체가 기쁜 일이다. 믿기지는 않았지만 결론은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서 정말 필요한 일이었다. 내 의견이 실현되는 거든 아니든 좋은 제도가 생겼으니 다행한 일이다.


  지금은 종합병원을 나와서 그 병원이 운영하는 재활요양병원에 계시지만 엄마의 병환으로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했었던 내가 지금도 믿기지는 않지만 우연의 일치든 그렇지 않든 환자와 보호자를 위해 그 어려움을 덜어줄 대안이 생겼으니 참 다행한 일이다. 나의 의견이 반영되어 생긴 제도라면 정말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국민의 의견을 이렇게 반영해 주고 잘 들어주는 세상은 참 살맛 나는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다시금 생각하는 건 행동하지 않으면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겪게 되는 많은 일들로 마음 다치는 일들이 많다. 가끔 나의 잘못이나 행동으로 겪게 되는 일들도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왕왕 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얼마 전까지 이유불문하고 난 나를 힘들게 했다. 근래에 와서야 분리해서 생각해야겠고 나를 힘들게 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삶이 녹록하지 않다. 그래도 살다 보면 우연이든 아니든 이렇게 내 뜻이 실현되는 일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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