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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Feb 25. 2023

허들

인생사

  언젠가 그랬다. 그 어떤 수도자 보다 일반인으로 살아가는 게 더 수도의 길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고. 설악산 어느 암자에서 수도의 길을 걷고 있는 수도승의 길이 더 어려울까. 설악산 꼭대기로 지게로 짐을 나르는 직업을 갖은 이가 더 어려울까?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 극한의 직업을 갖아 놓을 수도 물러설 수도 없는 사람들이 삶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산다.


  마주 앉아 마음 터놓고 얘기를 나누다 보면 저마다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들이 있다. 약간의 모양은 다르지만 모두들 그렇게 산다는 이유로 내 짐을 이겨내기도 한다.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면 다 그럴 것이라는 것이 위안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무겁고 크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무뎌지기도 하고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어겠냐, 그래, 동무삼아 같이 가보자.' 하기에 이르기도 한다. 저마다 다 그렇게 살아가고 또 버텨낸다.


  평생 딱 한 번 친구 따라 직접 글로 푸는 점집에 가서 점을 본 적이 있다. 그 이후로 지인의 오빠가 또 직업은 공무원인데 평생을 사주풀이를 공부하는 분께 우리 다섯 식구 사주풀이를 메일로 받아본 적이 있다. 이 두 번 모두 내게 초년에 고생이 많았다고 했다. '글쎄, 같은 세대의 그 누군들 고생스럽지 않았던 이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으로 살았다.


  빈농이었지만 그땐 거의가 다 풍족하지 않았으니 나만의 특별한 고난 포인트는 아니었다. 할머니와 양 부모님과 자매들, 평범한 농가에서 살았다. 그런 내가 뭐가 가장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취학 전에 불안정한 애착형성으로 일생을 힘들어하며 그 걸 극복하려고 부단히도 애쓰면서 사는 경우가 많다. 나의 경우는 그런 경우는 아니었지만 굳이 찾자면, 할머니, 특히 아버지의 아들타령이 가장 마음에 쓰였다. 성장과정 중에  점점 커갈수록 더 자주 딸만 넷인 우리 집에 아들이 없음을 종갓집 종손인 우리 아버지의 한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마주하며 살았던 게 가장 크게 다가왔었던 것 같다.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그런 환경 속에서 나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었다. '부모님, 제가 커서 아들 몫을 할게요.'라고 속으로 다짐하곤 했었다. 지내고 뒤돌아 보면 다짐에 그치고 말았지만 어린 나는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란 나는 생각 없이 장남과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임신을 하고 첫 아이를 유산을 했다. 원래 워낙 멀미가 심했는데 임신초에 남편과 함께 버스를 타고 시댁을 갔는데 마당에 앉아있었는데 이상현상이 일어난 것이었다. 그땐 참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동안 유모차를 밀고 다니던 아이 엄마들이 많이 부러웠었고 '나도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힘들었었던 때가 있었다.


  그 후 다시 아이를 갖았고 딸아이를 낳았다.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시절이 대부분 아이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시절이라 둘째를 낳아야 하는데 스멀스멀 '아들을 못 낳으면 어쩌나?' 이런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었다. 평생 당신이 겪은 스트레스를 딸인 내가 겪게 될까 봐 겉으로 말씀도 못하시고 속앓이를 하시고 계실 엄마가 생각났다. 그런저런 생각 끝에 그 지역에서 용하다는 한약방에서 약을 지어먹고 아들을 낳았다는 이웃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서 한약을 한 재 지어먹었었다. 약의 도움인지 운명이라고 생각되는 아들을 낳았다. 연이어 또 아들을 낳았다.


  동네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자면 맏며느리인 내가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은 우리 엄마는 마을회관에서  춤을 추셨다고 한다. 당신과 같은 걱정으로 살아갈까 노심초사하셨을 우리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었다.


  인생사 어느 누군들 걱정 없이 사는 이가 없을 것이다. '걱정'이란 '사랑'의 다른 모습이다. 나는 우리 엄마가 걱정하실까 걱정이었고 우리 엄마는 딸 걱정이 한 걱정이셨던 것이다. 나의 걱정이나 한도 한이지만 나를 목숨처럼 사랑하시는 나의 엄마의 걱정과 한을 풀어들인 것 같은 홀가분함이 있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요즘은 딸을 낳기를 소원하는 부모들이 많으니까 사회적 분위기나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만 그 옛날 우리 부모님 세대엔 그랬었다. 딸이고 아들이고의 문제가 아니라 각각 다양한 형태의  삶 속에서 '한'이나 넘어야 할 '허들' 같이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 허들을 넘고 이겨내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사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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