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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ul 31. 2021

빨간 맛

나 , 아들 그리고 말

  한때 나는 수선화를 무척 좋아했다. 음식도 나잇대에 따라 그 취향이 달라지듯 좋아하는 꽃도 그렇다. 수선화, 코스모스,  진달래,  수국,  모란 내가 좋아했던 꽃이다. 지금도 이 꽃들을 좋아하지만 시기별로 최애 꽃이 있는 건 사실이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처음으로 좋아했던 수선화의 꽃말이 자아도취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신비, 자존심, 고결이란다. 꽃말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서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그 꽃말 때문에 내가 그런 성격의 사람이 아닌가 되돌아보게 된다. 이슬을 품고 청초하게 핀 수선화를 좋아했을 뿐인데 그로 인해 나를 샅샅이 해부하게 된다.


  누가 보면 어이없다고 할 수도 있고 기가 막혀할 수도 있는데 놀랍게도 나는 가끔 내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는 있지만 근본적으로 나는 나인걸 좋아한다. 음식이고 사람이고 느끼한 걸 당최 싫어하 솔직하고 상당히 용기가 있다. 아닌걸 아니라고 말할 줄도 안다. 후훗, 그러고 보니 자아도취?!


   큰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신학기가 되어 학부모 총회를 한다고 해서 학교엘 갔다. 마지막 코스로 각 반에서 담임선생님과의 시간을 가졌다. 그런데 어렵게 시간을 내서 거의 전부의 학부모가 자리를 했는데 다짜고짜 담임선생님께서 장시간 학부모의 태도에 대한 지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요약하자면 집에서 애들 앞에서 선생님 흉을 보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충분히 그리고 당연히 그러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초면에 어려운 자리인 건 담임선생님이나 학부모나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그 많은 시간을 훈육하듯 학부모들한테 그럴 일인가 싶어서 손을 조심스럽게 들었다. 기회를 주셔서 말을 했다. "어려운 시간을 내서 이 자리에 온 것은 일 년 동안 어떻게 지도하실 건지 듣고 싶어서 왔습니다." 이렇게 말해버렸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이 애들 담임선생님과 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훗날 무례하다고 안 좋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염려도 하면서 누군가 해야 될 말이라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서 말을 한 것이다.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할 말을 할 줄 아는 내가 나는 좋다.


  그런데 오늘 아침 나는 할 말이었는지는 모르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해버렸다. 여섯 시쯤 아들을 깨워주고 뒷산엘 갔다. 운동을 마치고 집엘 왔다. 아침에 격일로 아침운동, 아침공부를 하는 아들이 부스스한 모습으로 날 보면서 원하는 걸 해달라고 요청했다,  원하는 걸 해주면서 한마디 했다. 못마땅한 감정도 섞어서 "되는 공부를 해라." 그렇게 말해버린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들었던 되는 공부를 한 후일담과는 거리가 한참 있어 보이는 노력의 농도를 보면서 꾹꾹 눌러서 참고 있던 그 한마디를 늦잠 자는 모습을 보고 마침내 해버린 것이다. 그 파장은 적지 않다. 서로 수습하려는 과정에 또 서로 귀에 거슬리는 말들을 한 것이다.


  구십된 노모가 칠십된 아들에게도 걱정 어린 말을 한다는 엄마 된 이의 기득권 같은 주장을 했다. 힘들게 공부하는 아들에게 공감하고 다독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이 솔직한 의사표현을 해야 맞을지도 모른다. 아들의 눈치를 보고 조심하고 독하게 더 치열하게 공부해야 네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강하게 말하고 싶었던 마음을 누르고 살았다. 무엇을 하든지 자신에게 혹독한 시간이 필요하다. 그 시간이 힘든 것 같지만 꼭 필요한 시간이고 이겨내야 할 시간이다. 그 누구도 아닌 미래의 나를 위해 현재의 내가 이겨내야 할 중요한 시간이다. 


  핑크빛만 사랑이 아니다. 강하고 매운 빨간 맛도 사랑이다. 그만한 건 알만한데 아직도 모르는지 쉽게 마음을 다친다.


  바나나, 비트, 사과, 아몬드 그리고 우유를 넣고 믹서기에 간 주스를 조그마한 찻잔에 한잔 마시고 휭 나가버린 아들의 뒤를 따라 땀 뻘뻘 흘려서 만든 아침상을 뒤로하고 덥다는 핑계로 표지만 일주일째 라보던 책을 들고 아들이 다니던 아들도 없는 도서관엘 와서 책을 읽다가 이 글을 쓴다. 이 여름에 바다도  아닌데 파도가 친다. 부디 서로 시원하게 느끼는 파도이길  바라면서 훗날 뜻하는 바를 이루고 이 시간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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