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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y 27. 2023

피는 물보다 진하다.

가족애, 자매, 말

  피는 물보다 진하다. ?! 물음표인지, 느낌표인지,, 둘 중 무엇인지 아직은 확신이 들지 않는다.

피로 연결되지 않는 가족도 결혼을 하게 되면 생긴다.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게 하는 말 한마디를 듣게 되면 피로 연결되지 않는 경우 제대로 마음의 벽이 생긴다.

그러나 피로  연결된 경우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하게 되지만 그래도 서서히 그 벽이 무너진다.


  울었다가 웃었다가 가끔 고성이 오갔다가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했다가 그러다가 바보처럼 '언제 무슨 일이 있었어?' 하는 마치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처럼 까르륵까르륵 웃어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우와, 피도 눈물도 없구나!' 하는 경우가 생겼었다.

'이건 뭐 어떻게도 안 되겠네!' 이런 마음이 들었었다.

다름 아닌 내 언니에게.


  서로에게 일기장 역할을 했었던 언니에게 그런 말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른이 되어서는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 못했기에 통화로 서로의 일기장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어릴 적엔 두 살 차이인 우리 둘은 서로의 기억 속에 모든 생활이 기록되어 버릴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수많은 일들을 같이 공유했지만 최근에 엄마가 병석에 눕고 듣게 된 말은 '남보다 못 했구나!'이런 마음을 갖게 했다. 더 설명하자면 '피도 눈물도 없구나!' 이런 마음이 들게 했다.


  그런 마음이 들게 하자 별별 생각이 다 나면서 그런 일이 있기 전에 서로 오십이 훌쩍 넘고서 나눴던 믿기지 않은 얘기까지 '아, 그런 마음이 그 언니 마음에 있었다고 했었지!'라는 생각까지 꼬리를 물면서 '그래, 어쩌겠냐,, 잊자!'이런 상태로 살고 있었다. 미련하게 또 꾸물거리는 언니생각을 누르면서 스스로에게 '바보야, 잊어!'이러고 살고 있었다.


  언니는 태생이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외모도 성정도.

반면에 나는 엄마 판박이다. 외모도 성정도.

언니는 생기발랄하고 총명했으며 뭐든 잘했고 빨랐으며 특히 음식을 맛깔나게 잘 만들었으며 미모가 출중했다.

그냥 언니라는 이유만으로 난 충분히 좋아하고 따랐지만 그런 언니라 더 자랑스러웠었다.


  반면에 나는 아주 쉽고 빠르게 날 설명하자면 그냥 곰이었다.

내가 봐도 느렸다. 모를 심을 땐 난 1m를 심으면 언니는 2~3m를 심었다.

뿐만 아니라 밥을 먹을 때도 늦게 먹는다고 빨리 먹으라는 타박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런 나는 언니를 많이 좋아하고 따랐었다.


  빠른 언니는 굳이 나를 많이 심부름을 시켰었다.

 집안 청소는 물론이고 특히 학교엘 가면 뭘 그리 잊고 다니는지 그때마다 날 불러서 집에 가서 가져오라고를 했다.

나는 그때마다 마다하지 않고 심부름을 했었다.

마다하지 않았었더라도 불만이었기에 지금도 기억하는 것 같다.


  그런 내게 서로 오십이 훌쩍 넘은 후에 언니에게 뜻밖의 말을 들었었다.

집에서 학교  가는 길에 제법 넓고 깊은 긴 개천이 있었다.

학교 가는 길에 그곳에 흠뻑 빠져버렸었다.

학교를 갈 수 없을 정도로 온몸은 물론 책가방도 다 젖었었다.

물에 빠진 건 언니가 일부러 나를 밀었었다는 것이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 굳이 믿기지 않은 그 말을 할 필요가 있었나 싶게 믿고 싶지 않았다.

왜 그랬냐고 묻자, 부모님이 나만 사랑한다고 생각했단다.

뭘 그러냐고 언니는 늘 칭찬받고 살았고 아버지가 읍내 문화행사에도 매번 언니만 데리고 다녔지 않았냐고 했다.

그랬어도 결국은 부모님은 공부 잘한 나를 자랑스러워했었단다.

거기에 덤으로 한 번도 자기는 사랑받았었던 기억이 없다고 했다.

참, 부모 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다.

본인도 장성한 두 아이의 엄마이면서 그렇게 사랑해 준 부모님을 그렇게 생각하다니 놀라웠었다.

그런저런 말을 듣고도 언니를 향한 나의 마음은 좀 믿기지는 않았지만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그 후로가 문제였다.

병석에 계신 엄마를 돌보는 문제를 의논하다가 믿기지 않는 말들을 쏟아내는 언니를 보면서 '피도 눈물도 없구나, 어떻게 친 혈육이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었다.

나의 최선의 방어는 침묵이었다.


  그런 마음을 갖고 살다가 근 일 년이 되었을 것 같은데 서로 엇갈려서 다니다가 어제 엄마 병실에서 딱 만났다.

엘리베이터문이 열리자 반갑게 "형부, 오셨어요."를 했다.

언니에게는 흐지부지 말를 하는 둥 마는 둥 했었다.

그러다 서로 주변 자식, 가족 안부를 물으면서 말를 섞었다.

불편했던 마음은 풀지 않았는데 그래도 또 말이 이어지긴 했었다.

형부차를 동생과 같이 넷이서 타고 주차장을 벗어나면서 내리는데 뜨겁게 가슴이 뭉클거렸다.

헤어져야 하는 시간이 되자 그놈의 주책없는 눈시울의 움직임이 감지되었다.

언니의 거칠고 험했었던 입을 무시하고 나의 가슴과 눈은 뜨겁게 반응을 했다.

 물러터지고 주책없는 나는 이놈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이겨내지 못했다.

먼 길 오가는 언니 내외의 찻길을 걱정하면서 또 그렇게 하나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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