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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May 22. 2023

대상 추구의 본능

외로움과 어울림 사이

  어느 이민자가 기쁜 일이 생겼는데 매번 그 누구도 함께 기뻐해줄 사람이 없어서 이민을 철회하고 다시 모국으로 복귀했다는 일화를 들었다. 그 마음을 충분히 공감한다. 진정으로 내 기쁨을 함께 기뻐해줄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살아야 살맛이 날 것 같다. 한시적으로 필요에 의해 외국살이를 하는 건 얼마든지 할만할 것 같다. 그러나 영원히 그곳에서 살아야 한다면 가는 그날부터 향수병에 걸릴 것만 같다.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좀 해봤었다. 사람이 그리운 것도 그리운 거지만 계절마다 나의 영혼을 어루만져주었던 고향의 풍광이 너무나 사무치게 그리웠었다. 이민을 가서 타국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면 사계절의 기후변화까지 모든 것이 그리워서 견디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타향살이도 아니고 타국에서 사는 것도 아니면서도 가끔 외로움에 몸부림치곤 한다. 자타공인 외로울 거라는 추측이 가능한 곳에서 살아서 외롭다면 차라리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런데 군중 속의 외로움, 그것 참 감당하기 힘들다. 외롭지 않을 거라는 충분한 기대치가 있는 곳에서 우리는 어김없이 외로움을 느끼곤 한다.


  들키지 말아야 할 본심을 들켜버려 상대를 배신감에 몸부림치게 한다거나 누구  내 기쁨에 기뻐할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정작 그다지 기뻐하지 않는다는 걸 확인해 버리는 순간. 다 부질없다. 내가 서 있는 이곳이 무인도 구나, 아니, 차라리 무인도였으면 하는 생각마저 들곤 해버린다.


  기대하고 실망하고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한 올 한 올 엮어가는 게 인생인가 싶을 때가 있다. 그런 원리가 마땅치가 않아서 애초에 원천봉쇄하는 마인드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살아버리는 사람들이 가끔 있다. 누군가와 관계를 맺고 서로 챙기고 챙김을 받고 뭐 그러다가 실망하고 그런 과정이 꼭 필요한가 하는 회의감을 일찍 깨우친 경우일 거다.


  본인은 그런 선택이 상당히 독립적이라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중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본인의 취지와는 무관하게 주변의 도움이 필요해버리는 경우가 꼭 생겨버린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도 누군가를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희로애락을 누군가와 나눠야 하는 필연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게 인간의 본성인 거다. 나 홀로 동굴생활이 어렵다는 거다. 그 방향으로 살기를 원한다 한들 종국에는 그건 고립이지 독립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 날마다 행복하길 바라거나 날마다 기쁜 날일 거라고 생각하거나 말처럼 날마다 꽃길만 걷게 될 거라는 생각으로 사는 사람은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행복할 때도 있고 외롭거나 힘들 때도 있을 것이다. 관계 속에서든 나 홀로든 실제로 살다 보면 행복은 찰나고 힘들었던 시간은 짧지 않다. 그래도 그 행복했던 찰나의 순간을 되새김질하면서 힘든 시간들을 이겨내는 게 보통의 삶이리라 생각한다.


  누구든 본인의 삶이 무겁게 다가서는 건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삶도 아닌데 어떤 이의 삶을 보면서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초혼의 결혼생활을 볼 때도 남편의 행동이 지극히 본인 주의 삶 일색인 생활을 하고 저렇게 까지 하는데 저런 행동에 왜 동을 걸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까지 들 정도로 맞춰주는 삶을 사는 걸 보았었다. 그런데 의외로 남편의 오만한 태도로 이혼을 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불편한 논쟁이 생겼는데 남편이 본인의 편에 서주지 않고 묵묵부답의 태도를 취했다는 이유로 이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 후 오랜 시간 홀로 지내다가 늦은 나이에 재혼을 하였는데 또 이 남편도 본인의 요구사항을 다 맞춰주길 원해서 그 뜻을 따르다가 일방적으로 원하는 걸 들어주기만 하는 본인을 발견하고 상대의 배려심에 목말라하면서 눈물짓는 걸 보았다.


  쌩떽쥐베리의 어린왕자에서의 그 길들인다는 거 그것이 어렴풋이 생각난다. 더 사랑해 버리는 사람이 알아서 맞춰버리는 거 그게 덜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악하게 길들이는 걸까? 아님 더 사랑해 버린 사람이 한없이 퍼주면서 받기만 하는 사람을 만들어버리는 걸까? 인생은 생각보다 짧은 것만도 아니다 그런 데다가 현실은 콩꺼풀이 영원하지만도 않다. 늦은 나이에 쉽게 변하지도 않는 사람들끼리 길들인다는 거 그거 쉽지 않다.

 

  삶이 계륵도 아니고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처지의 연속이라면 누군가를 길들이기 전에 본인을 다시 점검하고 본인을 외로움의 수평선 위를 떠다니게 하지 않기 위한 특단의 결심이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다. 상대를 안 사랑해서도 아니고 본인의 필요함만을 요구하는 상대에게 나도 이런 게 필요하다고 구체적인 제시를 해가면서 하나하나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유가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자식을 훈육하는 마음으로 깨우침이 필요하다면 미루지 말고 과감하게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대상 추구의 본능이 있다면 그 대상과 함께 진정한 행복을 일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게 현실이다.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본능'이라고 하지 않는가? 뭐든 저 얻을 수 있는 게 다. 하물며 그 소중한 '행복'을 노력 없이 얻을 수 있겠는가? 좀 많이 아닌 것 같아서 손을 놔버리고도 싶지만 그리고 또 많이 힘들지만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쉽지 않은 게 인생이다. 그러나 고지에 깃발을 꽂을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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