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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un 06. 2023

공짜를 허락하는 사람들

공짜

  힐링의 공간이라는 생각으로 텃밭을 일군다. 새소리 바람소리 풀내음 꽃향기 그리고 작은 씨앗이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는 과정을 지켜보는 행운을 누리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얼마 되지 않아 깨닫게 되었다. 뜻밖의 사회생활이 시작되고 그걸 극복하기가  쉽지 않음을 느끼면서 그야말로 청정 그 자체인 곳이 어딘가엔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이용하면서 마치 작은 영주(領主) 노릇을 하는 분이 있다. 초보 텃밭러에게 많은 정보와 가끔은 모종 같은 소소한 것들을 제공하고 이런저런 주문을 한다. 뜻을 따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묵묵히 따르지만 가끔은 과한 주문이라는 걸 느끼면서 그걸 그대로 참아낸다. 동이 틀 무렵 텃밭을 가면 어김없이 그분을 만난다. 친숙해져서인지 갈수록 간섭이 많아지면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잔소리를 한다. 만나는 시간만 참아내면 그래도 견딜만하겠는데 톡을 하루에도 몇십 개 보내고 시간불문하고 전화도하면서 견디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세상 공짜가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직장생활에서도 그건 아닌데 하는 상황을 마주하곤 한다. 뭔가 고마우면 그 고마워하는 말 한마디면 충분한데 그 고마운 순수함을 빛바래게 하는 행동을 하곤 한다. 사람에 따라 그걸 원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물질은 그냥 그 마음을 오염되게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게 상황이 안 좋아지면 무기로 변신하기 때문에 그건 아니라고 본다. 고마움을 물질로 표하기도 하지만 심하게 잘못했을 경우에도 물질로 먼저 무마시킬려고들 한다. 진심으로 사과하면 그걸로 충분한데 아무 말 없이 불쑥 차를 내미는 걸로 상황종료를 강요한다. 게 쉬운 말로 사회생활이라고 배웠는지 사는 게 순수함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비단 거리가 있는 사회생활에서만 공짜가 없는 게 아니다. 절친이라고 생각했던 관계에서도 그리고 세상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하는 부모자식 그리고 형제간에도 공짜가 없다는 걸 느끼곤 한다. 슬픈 현실인게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느낀 걸 참고 참다가 진하게 한마디 토해내셨다. "자식빚이 제일 무섭구나!" 이 한마디가 마치 피를 토하는 것처럼 보였으니 세상사 공짜가 없는 건 모든 영역에 해당되는 것 같다.


  사설이 길었지만 어리석게도 나는 그럼에도 공짜니 안 공짜니 하는 마음의 빚이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을 찾는 중이다. 나 혼자 일방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산다. 내 부모님 그리고 내 남편이 내게 공짜를 허락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고 산다. 내가 내 자식에게 기꺼이 내 생명까지 아깝지 않게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듯이 내 부모님도 그러하셨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내 남편은 생명이 다할 때까지 함께 갈 영원한 동반자라고 생각해서 그런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찾으려도 더 찾기 힘든 게 현실 일건대 불필요한 욕심을 부린다. 어딘가에 공짜를 허락하는 사람들이 한 둘 쯤은 더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한다. 부모 못지않은 공짜를 허락하는 형제가 있었으면 좋겠고 말려도 아니라고 대신 위험을 무릅쓰고 내 곁을 지켜주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식에게는 영원히 받으려고 하지 않는 부모이고 싶다. 육신이 늙어지고 눈은 침침해지는데 앞서거니 뒤서거니 본인들의 본모습을 과감 없이 노출해 버리는 사람들만 보이니 서글프기 그지없다.


  세상사가 하염없이 퍼주기만 한 관계는 쉽지 않다. 아홉 번을 줬는데 한 번을 주기를 꺼리는 사람을 보면 다시는 주지 않아야지 하면서 나를 단속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세상이 물질만능시대라고는 하지만 진심 하나만으로 무한한 위로가 되어주는 경우도 있다. 쉽고 빠르게 뭔가를 해결하듯이 관계를 유지하고 등지고 하는 세상은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을 공허하게 한다. 좀 더디더라도 한걸음 한걸음 다가가는 관계가 그나마 깊고 오래가서로에게 살만한 울림이 있는 인생이 되게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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