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Jun 10. 2023

16시간의 지옥

질병, 건강

  이른 아침 텃밭을 가기 위해 등산로를 오르는데 바람이 내 품에 안겼다.

 바람이 나를 안았는지 내가 바람을 안았는지 모르지만 그 순간 나의 작은 바람은 나도 바람이 되고 싶었다.

움직이는 바람은 아니더라도 공기처럼 승화되고 싶었다.


  만 오십에 내게 찾아온 손님은 나를 아주 일차원적으로 만들었다.

'부디 장수하게 해 주세요!'이게 나의 바람이었다.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큰 병을 앓고부터는 그 죽음의 두려움을 늘 체감하면서 살게 된다.


  바로 어제 건강검진결과지가 우편으로 도착했었다.

결과는 다행히 무탈하다는 것이었다.

깊은 날숨을 쉬면서 걱정하고 있을 가족들에게 무슨 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소견서를 공유했었다.


  밤 8시, 오른팔 상부에 큰 콩알만 한 게 잡혔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겨드랑이와 가까운 오른팔 상부를 만져보았다.  

웬 불청객이 누구 허락도 없이 그곳에 떡 하니 앉아있는 건지 가슴을 무거운 바위가 누른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젯밤 걱정에 걱정을 더하고 또 더하다가 긴긴밤을 지새웠다.

휴일이 지나고 월요일에 병원을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애써 별거 아닐 거라고 나를 다독이고 또 다독였다.

걱정할까 걱정되어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그 긴 지옥 같은 시간을 묵묵히 견뎠다.


  아침이 되어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텃밭을 향해 계단을 저벅저벅 오르고 오르면서 별별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은 성장할 만큼 성장했고 이제 더 이상 부들부들 떨고 또 떨고 있는 나를 마주하는 게 맞나 싶었다.

할 수만 있다면 바람이 되어 어딘가로 날아가고만 싶었다.


  어제 옮겨놓은 고구마 순에 물을 주고 오이나무에 붙어있는 벌레를 잡고 이런저런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그래도 묵직하게 누르는 먹구름 같은 걱정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그러다 갑자기 '오늘이 토요일, 병원문을 여는 곳도 있겠네.' 하는 생각과 함께 집으로 향했다.


  지인과 통화를 하다가 토요일에도 진료를 하는 병원을 찾아 급하게 갔다.

긴긴 기다림 끝에 초음파를 하고 결과를 받았다.

피부 밑 지방층에 염증이 생겨서 이런 큰 콩알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월요일까지 지옥 속에서 살았어야 했는데 다행히 짧게 지옥문을 나설 수 있게 되었다.


  요즘은 기상예보를 시간시간 세부적으로 자세히 해준다.

시간마다 비가 내리기도 하고 구름이 그려지기도 하고 해가 뜨겁게 내리쪼이기도 한다.

천국도 지옥도 실시간으로 구간구간 나눠서 찾아온다. 마치 기상예보처럼.


  짧은 지옥을 맛보면서 뭔가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구차하다. 부질없다. 별별 마음이 다 들었다.

정작 위협을 감당하기 힘들면서도 걱정할까 걱정되어 함구하게 되었다.


  텃밭에 발을 딛고부터 필요이상 열심인 성격이 또 출현하게 되어 그럴 일인가 싶게 열심인 거 그것도 고쳐야 한다.

체중이 무섭게 증가해서 운동을 시작하였는데 그것도 너무 무리하게 하여 이런 병증이 생겼나 의심이 된다.

완급조절을 해가면서 적어도 사는 날까지는 누군가의 걱정이나 짐이 되는 존재여서는 안 되어야겠다는 생각이다.


  건강 건강하는데 소중하다 뭐 그런 생각보다 진즉 우주 속의 점도 아닌 건 알고 있었는데 만감이 교차하면서 참 많이 작아지는 하루를 경험하게 하는 게 건강이란 생각이 들었다. ^^

작가의 이전글 공짜를 허락하는 사람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