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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Jul 22. 2023

너라면 널 위해 뭘 어떻게 하겠니?

나, 빨간 머리 앤

  내 작은 소망이 책 한 권 쓰는 거였다.

어찌어찌하다가 전자책 두 권을 썼었다.

그중 하나가 '누구냐고 묻는다. 내게'였다.

그렇게 책을 진짜로 쓰게 될 줄은 모르고 어느 날 큰아이와 남편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냥 궁금해서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아?"라고 물었다.

별 고민 없이 큰아이는 "엄마는 빨간 머리 앤 같아요."라고 말하자 남편이 이어서 "당신은 캔디 같아."라고 말했다.

다른 듯 하지만 같은 이미지의 캐릭터였다.

나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직장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요즘 무슨 낙으로 사셔요?"라는 질문을 했더니 어떤 분이 "보고 싶은 걸 찾아보고 있어요."라고 말하자 "뭐를 주로 보시는데요?"라고 했더니 "최근에 빨간 머리 앤을 봤어요."라고 말하는 거다.


오호,,,,, '빨간 머리 앤?!'

퇴근 후 빨간 머리 앤을 보기 시작했다.

찾아보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는 새벽 네시 반이 되었고 다음날은 새벽 세시가 되도록 봤다.

푹 빠져서 보면서도 큰아이가 내게 "엄마는 빨간 머리 앤 같아요."라고 말한 말이 생각났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빨간 머리 앤은 씩씩하고 의욕적이며 생기발랄하고 집념이 불타오르고 질문도 많고 감성적이었던 아이라는 건 생각이 났었다.

그래도 우리 큰아이가 내게 빨간 머리 앤 같다고 했던 이유가 뭐였을까를 찾기 위해 직장 동료가 말해서 오래간만에 들었던 그 이름 빨간 머리 앤을 보게 된 것이었다.


끝에는 길버트와 빨간 머리 앤이 제발 다른 사람과 인연을 맺지 말고 둘이 서로 꼭 연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보면서 그 옛날에 봤던 책에서 둘의 결말이 어떠했었는지 도무지 생각이 안 나서 괜히 초조한 마음으로 마음을 졸였었기까지 하면서 진짜 재밌게 봤다.


우리 큰아이가 엄마인 내게 빨간 머리 앤 같다는 말을 한 이유도 너무나 잘 알아버렸다.

샌듯하면서 여린 엄마의 모습을 우리 큰아이는 너무 잘 알아버린 것이다.

빨간 머리 앤이란 영상을 보면서 내가 앤이었더라도 아마도 앤처럼 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미소가 번졌다.


아주 많은 시간 동안 나의 시선은 밖을 향하고 있었다.

우리 막내가 수능을 본 후 내 나이 만 오십이 되던 해에 큰 병을 앓게 되고 그때부터 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절묘하게 아이 셋이 모두 대학에 입학하게 되자 신은 내게 이제는 너를 챙기라고 그렇게 병을 주신 것만 같았다.


다섯 식구의 거처를 각각 하나씩 주고 스스로 헤쳐나가라고,

이제 그만 식구 걱정 말고 네 걱정하라고 온통 내 시간을 내게 쓰도록 허락해 버렸다.

엄마가 하는 일은 자식 걱정이라 그 마음은 한결같지만 물리적인 시간은 나의 시간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어쩌면 그때가, 그 일들이 시련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 시간 그 공간의 나는 늘 정면으로 이겨냈었다. 지금도 돌이켜보면 누군들 힘들었던 시간들이 없는 사람이 있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


나와 정면으로 마주 보면서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서 열심이었던 나를 나는 내게도 열심이기를 바란다.

엔진이 고장 난 것처럼 난 내게 열심인 거를 낯설어한다.

아직 시작도 안 해봤다.

빨간 머리 앤에게 묻고 싶다.

너라면 스스로를 위해 뭘 어떻게 하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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