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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08. 2023

늙기 위한 준비

고독을 즐기고 외로움을 이겨내는 것

  이른 아침 텃밭을 향해가는 길에 아파트 산책로를 걷다가 하늘을 보았다. 분명 해가 우뚝 솟아있는 하늘에 달이 버젓이 떠 있었다. 해와 달이 공존하는 하늘을 보고 갑자기 무라카미 하루끼의 1Q84가 생각이 나버렸다. 흐려져가는 달을 보면서 한동안 쇼킹했었고 묵직한 감동이 있었던 때가 있었는데 줄거리마저도 흐려져가는 그 소설을 생각해 내면서 씁쓸한 미소가 아침 공기에 번져버렸다. 언젠가는 더 많은 것들이 흐려져버릴 거라는 짐작을 해보면서 터벅터벅 숲 속 계단을 올랐다. 지금은 달님은 온데간데없고 창밖의 살구나무에 찬란한 햇살이 빛나고 있다. 땀이 뚝뚝 떨어지는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든 것들의 지배자처럼 매미는 소리를 질러댄다. 그런 풍경 속에서 생뚱맞게 흐려져가는 나의 존재에 대한 이런저런 상념에 빠졌다.


  늙으면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말이 있다. 별일 아닌데 많이 서운하고 덩그러니 혼자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그런 시기가 올 거라는 것이다. 어쩌면 나란 사람은 누구보다 더 그런 기분이 들 것 같은 추측을 해본다.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지만 나란 사람은 살아있는 이유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는 게 사람다운 삶이라는 생각이 깔려있는 사람이라 늙어갈수록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이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게 참 많은 부담으로 다가올 것 같다. 물질적인 도움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도움을 원하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어쨌든 노후의 삶일 거라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현실이 어떻게 될지는 닥쳐봐야 알겠지만 지금의 의지로는 적어도 물질적으로는 끝까지 자립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자 한다. 정서적인 면이 관건인데, 과연 스스로를 감당할 수 있을지 물질적인 면 그 이상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살면서 마음을 많이 다쳤던 이유 중에 가장 핵심은 '기대', 그 부질없는 '기대'를 하면서 그걸 채우기 위한 움직임 즉 '욕심'이 많이 힘들게 했었다. 가장 큰 욕심 중에 스스로 인정받고자 하는 '인정 욕구'가 유난히 많았었던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믿고 기대했던 이들의 본심을 확인하고 실망하면서 굳은살이 생기듯 스스로 단단해져야겠다는 각오를 했었다. 그 와중에 끝까지 놓지 않은 건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 나의 노력이나 존재에 대해 인정해 주는 것이 내가 살아가는 힘이었다. 그들이 인정해 주는 것, 그것 하나로 씩씩함을 되찾고 살아냈던 것 같다. 노쇄하게 되면 뭔가 더 노력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게 될 것이고 자연스럽게 존재의 이유가 흐릿해질 것이므로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연의 섭리처럼 외롭게 될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젊음을 계속 유지하는 길이겠지만 그게 맘처럼 쉽지 않을 것이고 유한한 인생의 끝은 거부할 수 없는 노화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일기예보를 듣고 우산이나 방한복을 챙기듯이 예견된 노화를 위한 준비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다.  노후를 위한 준비는 다가올 외로움(loneliness)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거라는 생각이다.


  가끔 모두 잠든 시간에 홀로 눈을 뜨고 있을 때 나 홀로 우주에 둥둥 떠있는 기분도 들고 모든 시공간의 주인이 된듯한 생각이 들면서 묘한 자유로움과 행복함 느낄 때가 있었다. 아마도 나만의 고독을 즐기는 시간이었을 거라는 생각이다. 쉽게 말해서 스스로 청한 고독은 기쁨이기도 하고 행복이기도 한 것이다. 반면에 외로움은 누군가와 포근한 감정을 나누고 싶으나 홀로 쓸쓸하게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그런 감정을 일찍부터 스스로에게 학습하게 하고 누구나 겪는 거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남녀노소가 다 느끼는 감정이지 늙었기 때문에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걸 미리 알고 대처법을 스스로 찾아야 하며 철석이는 파도처럼 밀려오기도 하고 저 멀리 밀려가기도 하는 게 외로움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다.

어쩌면 누군가를 기다리듯이 외로움의 뒷모습을 볼 시간을 기다리면 해결될 문제인지도 모른다.


  앞서 살아 내신 분들이 "거죽만 늙었지 마음은 그대로다."라는 말씀을 하시는 걸 듣곤 했다. 아직은 그야말로 생의 중간에 서 있지만 점점 그 말씀이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도 공감한다. 왜냐하면 육신이 중력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축축 내려앉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고쳐 써야 할 곳이 늘어나고 있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병약해져만 가는 육신을 확인하면서 여기저기 떠도는 외로움을 자청해서 옷섶에 품기 시작하는 행동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늙을수록 나약해지고 그만큼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별도리가 없을 것 같다. 어쩌면 외로움이 유일한 동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본다. 그 끝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표라도 된다고 위안 삼을 것만 같다. 그다음이 뭔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언젠가는 그 외로움을 뛰어넘는 그 너머의 무엇을 발견할 날이 있을 것 같다. 하늘에 해와 달이 공존하지만 보였다가 보이지 않았다가 하듯이 나와 나의 외로움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 거라는 걸 알고 괜한 노화에 추궁하지 않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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