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를 그리워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질 때가 올 거라는 예측을 못해봤습니다. 죄송하게도 엄마가 편찮으실 때나 동생을 위한 기도 그리고 우리 아이들이 중요한 시험이 있을 때 돌아가신 할머니와 아버지께 간절히 기도드리게 될지도 몰랐습니다.
사실 살아계실 때는 제가 좀 어렸던지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하시는 분으로 많이 생각했었습니다. 어쩌다 우리 부모님은 한 동네에 사시는 분들이 결혼을 하셔서 친정이며 시댁이 얼마나 의식이 되셨을지 늘 우리 엄마의 고충을 절절히 이해하고 안쓰러워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종손이신 아버지께서 아들 없는 설움을 얼마나 많이 토로하셨었고 그 원죄가 엄마라고 할머니께서 얼마나 많이 말씀하셨던지 넘치도록 엄마가 불쌍하게 느껴졌었습니다. 그래서 살아계신 동안에는 할머니가 푸근하게 느껴지지 않았었습니다.
그런 할머니께서 아버지 돌아가신 지 십여 년을 훌쩍 넘도록 엄마와 단둘이 사셨었습니다. 그러다 맞은편 동네 작은아버지댁으로 가셔서 얼마간 사시다가 돌아가셨었습니다. 그 사이 엄마와 함께 할머니를 찾아뵈러 작은댁에 가면 할머니와 엄마 사이에 끈끈한 애정이 흐르는 걸 느끼곤 하였답니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두툼한 내의를 제게 주셨었습니다. 제가 사드린 내의를 새것인 채로 가지고 계시다가 거절하는 제게 제 눈을 보시면서 네가 가져가서 입으라고 간청하셨습니다. 그걸 끝내 제가 할머니께 져서 아이 출산 후 입었었답니다.
할머니를 생각하면 왜 그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농사짓는 집이면 쥐를 퇴치하기 위해 개나 고양이를 길렀습니다. 우리 집도 마당에서는 개가 살았고 실내에서는 고양이가 살았었습니다. 어느 날은 툇마루에 계시던 할머니의 발길에 고양이가 걸리적거렸던지 마당으로 훌쩍 던지셨습니다. 그런 일이 있고 얼마 지나서 집 뒷산 쪽에서 고양이가 뱀을 물고 마당 한가운데로 나타났었습니다. 그걸 보고 기겁을 하고 안방으로 숨어들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뱀이었고, 고양이도 싫었습니다.
어릴 적 유치를 문고리와 치아를 실로 연결해 두고 할머니께서 문을 닫아서 뺐었던 기억, 곰방대를 물고 계시던 모습이 조금씩 기억이 납니다. 세상에서 제일 겁 많았던 아이가 아마도 저였을 겁니다. 비행기가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면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떨며 목청껏 소리치면서 숨었었던 저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뿐만 아니라 알약을 먹어야 할 일이 있으면 온 식구가 제 팔다리를 잡고 있었고 입을 벌리고 숟가락으로 목구멍까지 알약을 넣느라고 진을 뺐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납니다.
가끔씩 할머니께서 온몸에 찬물이 흐르는 것 같다고도 하셨고 뼈에 바람이 송송 뚫고 간다고도 하셨었던 기억이 납니다. 유난히 눈코입이 또렷하고 예쁜 얼굴이셨던 할머니를 고모가 많이 닮았었나 봅니다. 하나뿐인 할머니 따님인 고모는 제가 본 미인 중에 손꼽을 정도이셨습니다. 마음씨도 부지런함도 솜씨도 제가 본 어른들 중에 최고셨습니다. 할머니께서는 젊으셨을 땐 우리 엄마를 많이 힘들게 하셨었습니다. 너무 많이 늙으셨을 땐 우리 엄마를 할머니 엄마인 것처럼 의지하셨었습니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은 연약한 어린아이 같았습니다.
돌아가신 지 많이 지난 요즈음 저도 모르게 할머니께 기도드리곤 합니다. 불쌍한 우리 엄마를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할머니께 부탁드립니다. 동생도 살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 걱정을 할 때도 할머니께 기도드렸습니다. 변변히 해드린 것도 없었고 가끔은 우리 엄마 힘드시게 한다고 서운해도 했었으면서 저는 왜 자꾸 할머니께 부탁을 드리는지 죄송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래도 저 딴엔 할머니를 많이 의지하고 싶나 봅니다. 죄송하고 면목없지만 앞으로도 계속 할머니께 부탁드리고 기도드릴 생각입니다. 그리고 많이 늦었지만 할머니를 사랑하고 그리워합니다.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