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11일 내 생애에 첫 전자책을 출간한 날이다. 표지 제작 관계상 아마도 그 달에 또 한 권의 책을 냈었다. 두 권의 책을 출간하여 3개월간 내 통장에 찍힌 입금액의 합계가 117,635원이다.
8년간 그림을 배우러 다니다가 우연히 독서 동아리분들을 따라가서 문예창작 관련 대회(?)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걸 목표로 하시던 분들은 줄줄이 낙마하고 뜻밖의 내가 입상하여 상금까지 받아오자 남편이 한마디 했다. "글을 쓰면 현세에 수확이 있고, 그림을 그리면 후세에 수확이 있다네. 글을 써보소."라고 했다.
남편의 말처럼 현세에 수확이 생겼다.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남편의 조언 때문도 아니고 무슨 소득을 목표로 한건 더 아니다.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좀 여러 가지다. 남편을 만나기 전부터 그야말로 소녀일 적에 책 한 권 쓰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었다.
이후로는 미래의 나에게 지금의 나를 책으로 엮어서 선물하고 싶었다. 또 한 가지는 한 번도 입 밖으로 내보내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 큰 병을 앓고부터 죽음이란 게 나와 동행하는 것만 같아서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내 아이들에게 엄마가 책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 옆에 언제까지나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런저런 이유로 책을 쓰고 싶어 했다. 그런 책을 오십 중반의 나는 환갑에 기념 미술 전시회를 하고 겸사 책 출간 기념도 하고 싶었었다. 아주 막연한 비현실적인 꿈이었다. 그러던 차에 올해 초에 어느 출판사에서 전자책을 출간하자는 제의가 있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책을 출간하고 새로운 시선이 생겼다. 그냥 나만 아는 설인지 여하 간에 이런 '설'이 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정한 친구인지 아닌지를 알게 된다.'라는 설. 그러고 싶지 않았으나 출판사의 눈치가 보여서 몇몇 지인들에게 홍보라고 할 수밖에 없는 홍보를 했었다.
짧은 통화였는데 언급한 지 일 분도 되지 않았는데 "구매했어요!"라고 통화 중간에 말하는 친구가 있었다. 감동이었다. 차 한잔 값도 안되니 정말 저렴하기도 하고 응원 차원에서 구매할 만도 한데 끝까지 움직이지 않는 친구도 있었다. 마치 그 '설'을 확인하는 미션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런 말 하는 건 좀 아닌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사람 사는 풍경 중에 하나이니 말하고자 한다. '마음 가는데 돈 간다.'라는 '설'도 있다. 언젠가 사랑에 일자무식인 내가 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난 '주는 마음'이라고 답하겠다고 했었다. 사랑하면 날마다 상대에게 무얼 줄까를 연구하게 되는 경험을 해봐서 그냥 단순하게 그렇게 말했었다.
책을 출간하고 통장에 117,635원이 찍히는 과정 중에 나는 확인하고 싶지 않은 걸 확인해 버렸었다. 그리고 환갑기념 미술전시회, 책 출판기념회 뭐 그런 건 없었던 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기회도 되었다.
그리고 그냥 뭐 '서운하다.' '고맙다.' 그런 일방적 감정의 이분법이 아니라 '아, 지인들께 민폐일 수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의 기회였었던게 맞다. 만약에 순수하게 전시회든 책 출간이든 그런 작업을 하고자 한다면 지인들에게는 알리지 않는다는 전재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좋아하는 걸 생업으로 삼고 사는 건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너무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다. 자본주의의 세포로 숨 쉬는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은 적어도 경제적으로 자유로운 상태에서 할 때 덜 슬플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느 배우가 말했다. "배가 고프면 고픈 만큼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먹고살아야 하니까."라고 했다. 먹고살만할 때 해야 덜 슬플 거라는 말과 상반되는 말이다. 배가 고파야 예술성 있는 작품이 나온다니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대형 출판사들에서 내 책이 판매된 것만도 내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영광이다. 꿈이 현실이 되는 걸 확인하는 기회도 되었다. 전업 작가분들의 애환도 체험하는 기회가 되었다. 117,635원은 내게 많은 걸 안겨준 값진 결과물이다. 그리고 117,635원은 내 꿈을 방해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