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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Sep 05. 2023

진심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이타심, 남편

  요즘은 소매치기가 많이 줄었다고 들었다. 결혼 전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출퇴근을 하던 시절, 소매치기 광경을 버스 속에서 목격한 적이 있었다. 무섭고 떨려서 소리 한 번 내지르지 못했었다. 어느 날은 버스 기사분이 알게 되었는지 다짜고짜 경찰서를 향해 버스를 운전해서 승객 한 분 한 분 확인을 한 후 보내주는 일도 경험했었다. 그런데 요즘은 현금을 가지고 다니는 사례가 많이 줄어서 소매치기도 줄었다는 방송을 봤었다.


카드도 다양하여 바로바로 통장에서 결제금이 인출되는 경우도 있고 수개월로 나눠서 지불되는 경우도 있다. 돈만 그런 게 아니다. 언젠가 세상사 공짜가 없다는 말을 했었다.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경우는 대체로 공치사가 그래도 적은 편이다. 그러나 자식이 부모에게 하는 경우는 어떤 형태로든 시간의 문제지 공짜가 아니라는 걸 확인하게 한다.


옆에서 보면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지극정성으로 부모님을 보필하는 경우 안타깝게 그 자리에서 바로바로 화를 낸달지 부모에게 함부로 대하는 경우로 본인의 정성을 까먹는 경우를 보았다. 아마도 카드로 비교하자면 체크카드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안타까운 모습이다.


올해가 결혼 삼십 년째다. 남편을 보아온지 삼십 년이 되었으니 참 오랜 시간 지켜보아왔다. 남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부모님이다. 시어머님이 지금의 내 나이보다 적은 나이의 모습일 때 결혼을 하였으니 많이 젊을 때였었다. 아들인 남편은 생선가시를 발라 생선살을 아버님의 밥 위에 얹어 드리는 게 일상이었다. 만 아니라 맛있게 요리된 음식이 있으면 솥째 들고 부모님 댁에 가져다 드렸다.


삼십 년째인 지금은 손수레에 아버님을 태워서 논두렁을 둘러보시게 하고 집에선 손끝하나 움직이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이 직접 시장을 봐서 부모님 드실음식을 만들어드린다. 본가와 멀지 않은 곳으로 직장을 옮겨서 하루가 멀다 하고 병원을 모셔다 드리곤 한다. 시간이 갈수록 부모님을 위해 사는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 그런 남편을 예전부터 국가대표 효자라고 지칭했다.


남편은 부모님을 향한 효심은 물론이고 형제, 자식에게도 남다르다. 부모님 대신 때마다 바리바리 싸서 동생들에게  택배로 보내고 부모님께 하는 건 형제들에게 알리지 않고 경제적인 거든 몸을 써서 하는 것이든 모두 혼자 해결하고 있다. 자식들에게는 거의 육칠십 년대의 어머니처럼 행동한다. 자신에게는 거의 아무것도 쓰지 않는다. 돈도 시간도. 안타까운 건 아내인 나도 본인과 똑 같이 대한다.


지켜보는 나는 매번 참 많이 이해가 안 되는 점이 있었다. 그런 극진한 아들 그리고 형을 그다지 고마워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한다는 점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평생을 그렇게 사는데 단 한 번도 생색을 내지 않고 예전에도 지금도 아니 시간이 갈수록 더 지극정성인데 왜 그들은 그런 자식 그리고 형을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고마워하지 않는 걸까? 언젠가는 고마워할까? 과연 그때가 언제일까? 의문의 눈으로 그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모님께 잘하는 건 잘하는 거라지만 결혼해서 동생 대학학비도 혼자 도맡아서 감당하고 부모님과 관련된 모든 걸 형인 남편이 다 감당하는데 어린 동생들은 언젠가는 감사함을 표현할 날이 올까? 왜, 형만 그렇게 헌신적이고 다른 동생들은 형을 닮지 않은 걸까? 언젠가 애들이 아주 어렸을 적에 시댁에 큰돈이 들어야 할 일이 생길 때마다 우리 혼자 감당하곤 해서 교육차원에서라도 십 분의 일이라도 동생들에게 하도록 얘기를 하자고 했었다. 단칼에 거절했다.


동생 중에 자수성가한 동생이 있다. 형도 대견하게 생각하겠지만 형수인 나 또한 대견하게 생각한다. 집도 사고 사업장도 있고 우리 집보다 한참 경제적으로 형편이 나은 상태로 결혼을 했었다. 없는 형편에 빚을 내서라도 동생에게 주고 싶어 하는 형을 보면서 대단한 형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 와중에 동생이 그 시절엔 흔치 않은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가면서 하는 말이 이제껏 단 한 번도 본인을 위해서 돈을 쓴 적이 없고 처음으로 돈을 쓴다고 했었다. 내가 알기로는 본인 집 사고, 차사고, 사업장 마련하고 오로지 본인을 위해서 검소하게 살았지 부모형제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런데 자신을 위해서 검소하게 살아온걸 본인을 위해 돈을 쓴 적이 없다는 표현을 한걸 보면서 속으로 본인을 위해서만 살았다고 일러주고 싶어 했었다.


한 부모 밑에서 나고 자라도 많이 다르다. 저런 형에 저런 동생이라, 뭐 그럴 수 있지! 어느 집이나 비슷비슷한 일들이 있으니 그러려니 이해하고 산다. 효자 남편을 둔 부인은 많이 힘들다고는 하지만 나름 속마음은 참 대견하고 믿음직하게 생각하는 면이 더 크다. 그런데 요사이 남편 입장에서 보면 고맙게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게 생각하는 부모님 그리고 형제들처럼 아내인 나까지 그의 효심에 이렇게 생각하면 야속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버렸다.


그의 효심은 순도 100% 의심의 여지는 없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당사자인 남편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부모님께 효도하고 동생,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일이기에 그 또한 자신을 위하는 일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런 내색을 하면 본인은 허탈할까? 아님 맞는 말이라고 할까? 올해 환갑을 맞는 남편에게 측은한 마음을 감출 수 없고 본인 하고 싶은 대로 살아도 별 잔소리 않고 언젠가는 내 남편일 때도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며 삼십 년을 묵묵히 옆에 있어준 아내를 향해 이제라도 눈길을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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