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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Aug 03. 2021

여름의 추억

1980년 전후의 농촌 풍경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근데 왜, 아주아주 오래된 옛날을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다고 했을까? 호랑이가 많았던 시절이라고 하면 차라리 실감이 났을 것 같은데 그토록 비현실적으로 오래되었단 표현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나저나 그렇게 까지는 아니지만 반백년을 넘기고 있는 나도 오래된 사람인 건 확실하다. 십 대 때는 농촌이 활동 무대였으니 렴 풋이 기억의 깊은 어딘가에 있는 1980년 전후의 풍경을 얼기설기 더듬어 보고자 한다.


  요즘 말로 라때는 집집마다 한 집에 일곱 여덟 명의 자식을 낳아 기르던 시절로 학교의 한 학급 수도 육십 명이 넘는 게 대부분이었다. 그때의 도시 학교는 학생수가 포화 상태라 오전반 오후반 이렇게 운영했다고 들었으니 말 다했지 싶다. 그런 시대라 부모님들은 대부분 논밭에서 일과를 지내시고 큰 아이가 가사는 물론이고 동생들을 키우다시피 했다. 그뿐만 아니라 자식들이 어느 정도 크면 준 농부라고 할 정도로 농사일을 거들면서 학교를 다녔다. 지금 초등학생들은 상상하기 힘든 일들을 집에서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했다. 그때는 기계화가 되기 전이라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모를 심는다거나 보리, 벼를 베러 이 마을 저 마을에 단체로 다녔다. 수고비로 받은 아이스크림 하나씩을 먹으면서 학교로 복귀해서 하교했었다.


  그때는 농지정리가 시작단계였고 배수로 시설도 원활하지 않았던지 여름철에 장마가 시작되면 온 동네가 물난리가 났다. 어릴 적에 보고 느끼는 건 더 크고 많게 느껴서인지 눈도 비도 왜 그렇게 많이 왔었는지 비가 그냥 많이 왔다고 표현하면 그 표현이 한참 부족하다. 논밭이 잠기는 건 기본이고 마을 앞 큰 하천엔 윗 지대 마을들에서 가재도구는 물론이고 소, 돼지, 염소 등 가축들이 살아있는 상태로 둥둥 떠 내려왔었다. 왜 그뿐 이였겠는가? 홍수에 사람들도 물에 떠밀려 많이들 죽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그 큰 하천을 건너 학교를 다니던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한 살씩 늦게 입학을 하곤 하였지만 그럼에도 물에 떠내려가 죽는 경우가 있었다. 애써 기른 농작물들은 온데간데없고 그나마 남은 벼는 벼꽃이 필 쯤에 물난리를 겪어서 빈껍데기만 남는 농사가 되었다. 그때는 그렇게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았었다.    


  농촌의 여름이 그렇게 매일 재난 상태인 것만은 아니다. 그 와중에도 포도송이 영글듯 우리들의 추억은 알알이 익어 갔다. 소나 염소를 풀이 무성한 곳에 묶어 두고 개천에서 우렁, 고동, 맙, 재첩 등을 잡다가 동네 친구들끼리 물놀이를 지치도록 하다가 해가 질 때쯤이 되면 소, 염소를 앞세우고 집으로 왔었다. 잡아 온 우렁, 고동 등을 된장을 풀어 맛있는 된장국을 만들어서 저녁을 맛나게 먹고 덜 마른 잡초를 태워 연기를 마당에 가득 채워서 모기를 쫓으며 윗집 담벼락의 가시나무를 꺾어다가 고동을 까먹고 참외, 수박, 옥수수를 배가 수박만큼 커지도록 먹고 더위가 한창일 때는 남자들은 등목을 하고 여자들은 이웃집들의 여자들과 함께 다리 밑 개울을 찾아 더위를 씻어 낸 후 집으로 돌아와 모기장을 친 방으로 들어가서 잠을 청했던 한여름밤의 아름다운 추억을 어떻게 잊겠는가?


  자연을 무대로 지치도록 놀아도 보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자연재해도 이겨내며 힘겨운 농사일도 거들면서 자란 나의 어린 시절은 세계적인 부호가 부럽지 않은 마르지 않는 저금통처럼 살아 있는 동안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끊임없이 행복하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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