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참 다양하다. 직장에서 정말 솔선수범하는 젊은 친구가 있다. 언제 어디서나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친구라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그 친구와 마음을 터놓고 얘길 나누는 친구의 말을 들어보니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하던 친구는 "왜, 본인이 그 일을 하고 있어야 하는지 속상하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본인의 일도 아닌데 굳이 나서서 해놓고 속마음은 그렇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적어도 본인의 마음은 속이지 말아야지 무엇을 위하여 누구를 위하여 그런 겉과 속이 다른 행동을 하는지 참 사람 속은 알 수가 없다.
살다 보면 참 다양한 인간군상들을 만나게 된다. '그냥 참 많이 다르구나!'라는 그 다르다는 걸로 덮고 사는 게 방법이려니 하고 살지만 그래도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이들은 적어도 나 같길 바란다. 뭐 내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다웠으면 하는 마음이다. 항상 좀 바보스러울 정도로 그냥 묵묵히 일 앞에 정면승부했었다. 단 한 번도 잔머리를 쓰지 않았었고 핑계 따윈 생각해 낼지도 몰랐었다.
육일 간의 추석 연휴 중 딱 오늘 하루가 없었다면 아마도 난 응급실에 실려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들 휴일이 길다고 반기는 기색이었지만 결혼한 며느리들은 명절이 긴 걸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명절은 길어도 너무 길었다. 겁 없이 맏며느리가 된 것처럼 긴 명절도 그렇게 겁먹지 않았었다. 신혼 십 년간 동서들 없이 며느리가 혼자였던 시절처럼 오래간만에 많이 힘들었었다.
아랫동서가 둘이다. 그전에 나 홀로 며느리 생활을 근 십 년을 했었다. 가풍이 많이 다른 시댁은 모든 걸 큰아들 내외에게 의존하는 편이다. 처음엔 생선 손질을 무서워서 못하고 남편에게 부탁해서 적당히 말려서 준비하고 모든 음식물을 우리가 준비하는 터라 김치 담글 재료, 모든 음식 만들 재료, 송편 빚을 모싯잎가루까지 시장을 봐서 시댁을 가서 종종거리며 혼자서 음식을 준비하고 뒷정리하고 청소하고 뭐든 내가 다 해야 하는 줄만 알고 그렇게 죽지 않을 정도까지만 일을 하면서 십 년을 살았다. 젊을 때라 그럴 일이 아닌데 허리가 펴지지 않아서 바로 서지도 못하고 걸으면서 일했었다. 뿐만 아니라 쉬어야 할 시간에는 오락부장처럼 놀이를 주도했었다. 참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했다.
그렇게 십 년이 지나자 동서가 생겼다. 동서가 생겨서도 덜 힘들었지만 신입 며느리 생활이 지나기도 했기에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 일의 완급을 조절하면서 하는 융통성이 생겨서 한결 편해졌었다. 며느리 생활 이십 년 차가 되자 막내 동서가 생겼다. 며느리가 셋이라 일을 서로 도와가며 하게 되었다. '이런 날이 오는구나!'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 쉬는 시간도 생겨서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면서 명절을 보내게 되어 더 이상 명절이 무섭지 않았다.
이번 추석 연휴가 육일이라고 다들 반기는 분위기였다. 연휴 며칠 앞에 바로 아랫동서가 전화를 했다. 아이가 아파서 이번 추석엔 시댁엘 못 갈 것 같다는 것이다. 사정이 그런가 보다. 그렇게 알고 시댁엘 갔다. 음식 준비를 마치자 막내동서가 왔다. 차례상도 나 혼자 차리고 또 혼자 치우고 가족들 식사 준비도 혼자 했다. 설거지 딱 두 번 하고는 막내동서는 기침을 몇 번하더니 아프다고 손을 놓았다. 차라리 혼자였었다면 더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긴 긴 추석을 쉼 없이 막노동을 하면서 온몸이 갈기갈기 갈라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면서 이겨냈다.
평소에도 가사를 누구에게 시키거나 그런 편이 아니다. 내 한 몸 힘들고 말지 하면서 곰처럼 혼자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아이들도 이제는 가사를 배울 때도 되었고 혼자 감당하기엔 노화도 오고 하여 함께하길 원한다. 그런저런 생각이 들면서도 막상 시키질 않고 또 나 혼자 감당하려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난 한결같은 마음이었다. 내가 말하기 전에 '혼자 하면 많이 힘들겠구나 같이 도와야겠구나'하면서 주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주길 원했다. 큰아이가 간혹 도와주기는 하나 많이 아쉬운 건 사실이다.
"형님, 맛있어요!", "엄마, 맛있어요!" 그 말이면 충분하면서도 이젠 좀 늙었는지 좀 긴 명절은 감당하기 힘들다. 명절 음식은 물론이지만 1인 1 가구를 이루고 사는 가족들을 위해 뭐라도 먹고살 수 있도록 준비해서 보내야 하는 엄마는 있는 힘을 다해 일을 하고 또 했다. "만들어준 음식이 맛있었어요!" 그러면 금방 화색을 띠며 "고맙다!" 그런 내게 큰아이는 "뭘요, 왜 엄마가 고마워요?"라고 말한다. 고맙고 또 고맙다. 간혹 둘째가 "엄마, 그것 좀 또 만들어서 보내주세요!"라고 말할 때면 신바람이 나서 또 만들어서 보내주곤 한다.
약간의 감기 같은 동서가 아파서 부엌엘 못 나온다고 듣게 되자, "명절에 안 아픈 며느리가 어디 있냐?"라고 혼잣소리 처럼 했는데 좀 마음이 쓰인다. 어쩌면 몸이 지하 어디까지 내려앉은 것 같은 힘듦을 이겨내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바보처럼 묵묵히 일을 하는 본인과는 많이 다른 주변인들을 보면서 불쑥해버린 말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더 나이 든 사람이 다 준비하면 뒤늦게 일어나서 나오는 걸 보면 요즘 며느리는 뭘 어떻게 배우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으면서도 묵묵히 참아내곤 한다.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또 삼키는 건 일을 혼자 다하고 꼰대 소리까지 듣게 되면 억울할 것 같은 늙은 사람의 마음이다.
긴 명절을 이겨내고 홀로 있는 시간을 마음껏 누리면서 난 내게 한 마디 하고 싶다. 많은 사람들을 겪으면서 또 한 번 느낀다. "난 내가 나인 게 좋다!, 난 내가 마음에 든다."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진심으로 바라는 게 있다. 나를 위하는 그 누군가에게 감동하고 싶다. 진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