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 앞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어린 시절 크게 보였던 것들은 커서 보면 아주 작게 보인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정비가 덜된 상태여서 그랬던지 어릴 적엔 매번 비가 오면 엄청나게 많이 왔었던 걸로 기억된다. 장마철엔 돼지 염소 등 가축은 물론이고 가재도구들도 둥둥 떠내려가는 일들이 잦았었다. 지금도 기억나는 일은 비가 많이 오던 날은 비포장 도로에 파닥거리는 미꾸라지들이 쉽게 잡히곤 했다. 그럼 우리들은 웅덩이를 만들어 미꾸라지며 송사리를 가두어두곤 했었다.
어릴 적 수채화 같은 기억들을 떠올리면 스스로가 정화되는 기분이 들곤 한다. 영원히 잊히지 않기를 바란다. 어릴 적뿐만 아니라 가끔 오래 기억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그때마다 수첩을 꺼내서 기록해두었어야 했는데 그냥 흘려보내고 만 것들이 많았다.
아이들을 키우면서도 수많은 일화들이 있었는데 늘 사진을 남기듯 기록했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게 참 많이 아쉽다.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기록하고 싶듯이 우리 엄마에 대한 생각들을 기록하고 싶다. 정확한 내용이 뭐였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우리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나 행동들이 학교에서 윤리과목을 배우는데 윤리책에 쓰여있던 내용과 일치했던 게 있었다. 윤리책에 나온 구절을 보고 또 보며 '아, 우리 엄마가 하신 좀 세련되지 않는 표현과 내용이 같구나!' 하며 크게 놀라워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기억하는 우리 아버지의 레퍼토리는 "군자는 대로행이니라."였었고, 우리 엄마는 이유여하를 막 논하고 "네가 잘하지 그랬냐?"였다. 동네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리 아버지를 향해서 하신 말씀은 "법 없이도 사실 분."이었다. 처자식 건사하려면 어느 면에서는 좀 독한 면도 있어야 험한 세상 헤쳐나갈 수 있었을 텐데 우리 아버지는 마냥 착한 분이었던 걸로 어린 내 기억 속에도 남아있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많이 힘드셨다.
우리 엄마는 그야말로 가족을 위해 뼈가 가루가 되도록 고생하시면서 사셨다. 전체적으로 그러셨지만 일상에서는 욕쟁이할멈 같은 모습으로 언니한테나 내게 동네 친구들을 언급하며 본받으라는 식의 표현하기 좀 그런 말을 수시로 하셨었다. 그래서 늘 언니와 나는 진절머리를 치곤 했었다.
그런 엄마에게 어느 날은 작심발언을 해버렸다. 같은 동네에 사시는 외숙모는 늘 조용하고 논리 정연한 모습으로 보여서 "외숙모가 우리 엄마였으면 좋겠다."라고 했었다. 우리는 친구들과 백만 번도 더 비교를 하셨으면서 딱 한 번 한 그 발언에 아무 말 없이 움찔하시는 것처럼 보였었다. 그 후로 마음속으로도 같은 생각이었고 하여 "엄마, 엄마가 우리 엄마여서 좋아!"라고 몇 번을 했었던 기억이 있다.
우리 엄마가 윤리 교과서에 나온 내용을 무의식적으로 우리들에게 교육하셨던 것처럼 오늘 내가 모르고 했었던 말을 유명 강사가 해서 깜짝 놀랐다. 그렇다고 우리 엄마처럼 교훈이 될만한 말을 내가 했었던 건 아니다. 우리 남편에 대해 내가 한 말이다. "남편은 나를 본인과 동일시 한다."라고 말하곤 했는데 그 말을 유명 강사가 뇌를 연구하는 박사가 말했다며 결혼하고 적정 기간이 지나면 남편은 아내를 본인과 동일시한다는 연구 보고가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체험해서 한 말인데 뇌과학 박사가 연구 결과로 보고한 내용이라니 많이 놀라웠었다. 안타깝게도 남편은 모두에게 배려하고 친절한데 본인에게만 인색하다는 말을 하면서 그런 의미에서 아내인 날 본인과 동일시한다고 했는데 그게 남편이란 사람들의 특성인 것처럼 연구 보고되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씁쓸하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각성하여 신혼 시절처럼 되돌아올 날이 있을 거라는 기대 속에 한 말인데 마치 불치병과 같은 속성이라니 안타깝다.
누구도 아닌 스스로의 선택과 판단으로 살아왔으면서 노년을 코앞에 두고는 막연하게 기대를 하는 건 또 무슨 이치인지 모르겠다. 알고 보면 남편은 남편대로 가족을 위해 쉼 없이 달려왔고 그런 남편을 묵인하고 이해하면서 함께 달려왔으면서 이제라도 뷰 좋은 카페에서 진한 향의 커피라도 함께하자고 자발적으로 해주길 기대한다. 부질없이 그런 바람이 현실이 되어 오늘이 더 먼 미래의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되길 기대한다.
어린 시절 비 온 뒤 작은 웅덩이에 송사리며 미꾸라지를 가둬두고 친구들과 해지는 줄 모르고 놀았던 추억이 불쑥불쑥 기억나듯 멀지 않게 다가온 황혼 앞에서 소소한 추억들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웅덩이를 만들듯 남은 날 중엔 그래도 가장 젊은 오늘이 아름답게 또 하나의 작은 웅덩이 속에 갇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