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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Oct 17. 2023

묻어두고 산다는 건

관계, 신뢰

  조선시대나 뭐 그렇게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대중들의 시선 속에 사는 연예인들을 보아도 부모가 다른 자식을 위해 어떤 자식을 버리는 발언을 한다. 대부분 돈 때문인 걸로 보인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지 세상 모든 사람의 등을 보고 살지언정 부모는 자식에게 등을 보일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부모까지 자식에게 등을 보이는 경우는 무엇으로 자식은 살아내야 할지 암담할 것 같다.


관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기본이 되는 건 역시 신뢰라고 생각한다. 배신은 단순한 관계의 끊김이라고만 할 수 없다. 극단적인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전부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배신은 정신적 죽음과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나이 먹도록 배신감 한 번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면 거짓말일 거다.


몸에 난 상처는 흉터로 남을지언정 그냥 그렇게 잊고 살아진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가까울수록 치유의 시간이 길고 잘 잊히질 않는다. 거의 당사자에게 정면으로 아프다고 너무 아파서 편안하고 싶어서 말한다고 하면서 터놓고 말하는 게 그래도 더 빨리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그런데 그 배신감을 느꼈던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은 '묻어두고 살아보자.' 그런 생각으로 일 년이 훌쩍 넘었는데 침묵하고 살고 있다.


지금은 그렇게 까지 나를 단속하지 않지만 그 당시엔 스스로에게 많이 당부하면서 살았다. 터놓고 얘기하면서 용서하고 또 가깝게 잘 살아보자는 둥 그런 행동을 하지 말기를 스스로에게 당부 또 당부했었다. 물렁한 곰탱이처럼 구는 나를 잘 알기에 그 고비를 넘기기가 힘들었었다.


당사자가 깊이 반성하고 같은 잘못은 절대 안 하겠다고 미안하다고 하지 않는 이상 철저하게 마음을 주지 말자 그리고 거리를 두자가 예전에 없던 나의 모습이었다. 상대는 당시에 슬쩍 "미안하다."라고 지극히 형식적인  한마디 하고  그 이후에는 진심을 담아 정중하게 미안함을 표하지 않았었다. 약간 위축된듯하면서 눈치를 살피는 정도였었다.


묻어두고 산다는 건 자신을 오래 힘들게 하는 일 같다. 상대가 진심으로 사과하고 같은 일이 없겠다고 했었으면 더 바랄 게 없었을 텐데 참 힘들다. 다 좋은 순 없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관계를 유지하고 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신뢰를 저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곳에 지뢰가 묻혀있을지 모르는 기분으로 살 수는 없다. 요즘 사방이 CCTV가 설치되어 있다. 그런데 내 마음속까지 누군가에게 찍히고 싶지 않다.


본인의 이익과 관련되었을 때 막역하게 지내던 친구의 허물을 캐기 위해 주변에서 정보를 취하고 그걸 말해서는 안 되는 분께 내 허물이라고 보고를 한다면 그 누가 그런 사람과 마음을 나누면서 살 수 있겠는가? 그 허물이라는 게 그 보고 받을 사람의 지시로 하지 않았는데 그걸 내 허물이라고 생각해서 보고했더라면 보고한 당사자는 내게는 물론이고 그분에게도 사람 아닌 걸로 취급받았을 것이다. 대화 중에 나를 위협하다가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멈췄기에 본인의 추한 모습을 더 많이 들키지 않았었다.


멀쩡해 보이는 외관과는 달리 불쑥불쑥 본모습을 내보이곤 했었다. 그때마다 사람이니까 실수도 하겠거니라고 생각하면서 덮고 살았다. 그러나 근본을 뒤흔드는 배신행위는 좀처럼 용서되지 않았다. 물탱이 같은 성정을 드러내서 다시없었던 것처럼 호호거리며 막역하게 지내려는 나를 나는 경계한다. 바보처럼 또 내 속내를 다 드러내고 사는 우를 범할까 봐 걱정이다.


속상하다. 묻어두고 살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속 시원하게 터놓고 훌훌 털어내고 호탕하게 포옹하고 화기애애하게 살고 싶다. 미래를 걱정하면서 현재를 불편하게 살고 싶지 않다. 묻어둔다는 건 잊지 않겠다는 다른 말인 것 같다. 상처 입는 일이 있더라도 솔직하게 편안하게 살고 싶다. 누군가를 의식하면서 산다는 건 창살 없는 감옥과 같다는 생각이다. 배신을 또 당하지 않고자 몸부림친다. 털어내지 못하고 묻어두다가 내게 내가 묻히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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