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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Oct 19. 2023

사람의 구성요소

나, 인간

  요즘은 살만하나 보다. 외부의 자극에 양은냄비처럼 반응하지도 않고 나를 대형 현미경 위에 올려놓고 '넌 누구니?'라고 하려는 폼이 평안하나 보다. 천만에다. 얼마 전에도 활활 타올랐다가 자체 진화한 일이 있었다. 나의 발화점은 아주 쉽고 단순하다. 내 일이든 남의 일이든 불합리함을 느끼면 불합리함이 해결될 때까지 타오른다. 물론 내 일일 때 화력이 세고 남의 일일 땐 좀 약한 건 부인할 수 없다. 큰아이가 오지랖퍼라고 놀릴 만큼 남의 일에도 어떻게든 조력자 역할을 해서라도 진화에 나선다. 


얼마 전 진료를 받으면서 "일 년에 한 번 오시면 됩니다."로 시작해서 "육 개월 후에 오십시오."라고 했던 의사분의 말을 상기시키면서 '절대 스트레스 퇴치' 이게 나의 살길임을 인식하였기에 스트레스 요인을 제공한 상사에게 그날이 가기 전에 부적절하고 불합리함을 설명하며 신속한 진화에 나섰다.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하고 조퇴하고 이틀간 출장 가버리면 그동안 나는 스트레스에 병증을 키우고 있을 것이 너무 훤히 보여서 조기 진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속전속결, 깔끔하게 해결 후 퇴근했었다.


"당신은 절대 병에 걸리지 않을 거야, 불편한 마음을 오래 품고 살지 못하니까."라고 남편이 말했다. 병에 걸려버렸으니 결론은 남편말이 틀렸다. 각자 스트레스를 해결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스트레스가 내게 들어오면 스트레스를 준 당사자에게는 말을 못 하고 주변인들에게 말로 스트레스를 토해내는 스타일이다. 들어줘야 하는 주변인들은 좀 힘들겠지만 그렇게라도 해결해야지 숨을 쉴 수 있으니 별도리가 없다. 금 나의 생존은 내 말을 들어준 분들의 공이다.


최근에야 주변인 부여잡고 토해냈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온몸으로 곰탱이처럼 묵묵히 다 받으면서 뒤척이고 말았다. 우리 엄마가 자식 넷 중에 가장 순한 게 나라고 말씀하셨었다. 삼십 년 산 남편도 훈육하느라고 목청 높였던 엄마를 순하다고만 생각하지 않는 아이들 앞에서 "너희들 엄마는 순한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순한 사람이라고 포탄이 없는 것도 아니다 보다가 더 이상 볼 수 없을 땐 포탄을 품고만 있지 않는다.


순한 성정과 좀 다른 색깔의 할 말 하는 용기 있는 성품 그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다. 그때도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은 아이들 선생님과 사돈이라고 생각한다. 용기라고 하긴 좀 그렇지만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이 있을지도 모르는 걱정도 있으면서 그 어렵다는 아이 담임선생님께 할 말을 해버렸다.


큰아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일이다. 학부모 총회를 마치고 담임 면담을 하는데 아이들 수만큼 학부모님들이 참여한 자리에서 난생처음 본 사십 중반의 담임 선생님은 장시간 학부모님들을 향해 강한 어조로 훈계하기 시작했다. 모든 학부모님들이 묵묵히 참고 있는데 손을 들고 일어서서 "우리 아이들을 한 학년동안 어떻게 지도하실지 듣고 싶습니다."라고 말해버렸다. 예의를 저버린 사람을 향한 나름 가장 순화시켜서한 나만의 항변이었다.


문득 사람은 물감 같다는 생각을 했다. 24색 또는 36색 이렇게 또렷하게 분리되어 있는 색깔들처럼 한 사람을 해부하면 또렷하게 각각의 색깔로 나눠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물감을 사용하여 그림을 그리다 보면 진노랑 연분홍 뭐 이런 식의 분화가 이루어지듯이 사람들도 뭐라고 딱히 단정하기 힘든 오묘한 색깔을 띠는 경우가 있다. 빨강 노랑 파랑처럼 현명하고 자신감 넘치면서 유머가 넘치는 그런 사람이라도 회색 갈색처럼 어두운 일면들을 갖고 산다.


학창 시절 어느 선생님께서 물으셨다. 사람은 선천적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후천적이라고 생각하는지. 퍼센트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내성적인지 외향적인지를 예로 들자면, 20 대 80인지 45 대 55인지 개인마다 그 비율이 다르다는 것이다. 편으로는 면성을 가지고 사는데 대체로 본인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부분이 크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시선 앞에서 그 사람이 본인의 선한 성품을 자주 선택하여 사용하면 선한 사람으로 비치고 악한면을 선택하여 행동하면 악한 사람으로 비친다는 것이다.


'하느님이 바빠서 대신 엄마를 보냈다.'라는 말이 있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백 년을 산다고 하면 그 한 인간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존재는 엄마인 것 같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라는 말처럼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배우는 건 자식인 거다. 수많은 책을 접하고 사교육을 받고 유학을 보내고 말할 수 없는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부모가 자식에게 훈육을 해서 가르치는 부분과 부모의 사는 모습을 보고 배우는 것이 자식들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산다. 살다 보면 '내가 경주마인가?'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때론 '먹이사슬에서의 분해자인가?'라는 생각까지도 들곤 한다. 그러다가 어느 때에는 사람들이 쏟아내는 말이 비수가 되기도 하고 활력이 되기도 해서 나를 동글동글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런저런 풍파를 겪으면서 단단하고 듬직한 성정을 갖고 태어나야 그래도 한 세상 살아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결국은 부모가 진하게 사랑해 줄 때 아이는 그 힘으로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운동회 때 이어달리기를 하듯 부모는 자식에게 바통을 주고 그걸 받아서 달리던 자식은 또 자식을 낳아서 바통을 주고 그렇게 쉼 없이 어 달리기를 하는 게 인생사다. 사람이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그래도 태어나서 제일 잘한 건 자식을 낳아 기른 거라고들 한다.


방황하는 수많은 군상들이 있다. 알고 보면 방황의 시작과 원죄인은 부모다. 부모로부터 제대로 느끼지 못한 사랑 때문에 일생을 수많은 방황을 하면서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으로 몸부림치는 자식들이 있다. 자의 힘의 원천은 부모다. 허공을 향해 쉼 없이 '나는 누구인가?'를 묻고 나를 이룬 구성요소는 무엇인지 찾아 헤맨다. 알고 보면 부모의 사랑과 정성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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