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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Oct 24. 2023

길을 찾는 사랑

  사랑은 영원히 일방적일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적극적이든 상대의 반응과 무관하게 본인이 사랑이라고 해석해서든 쌍방의 티키타카가 있어야지 오래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들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은 영원하다고 생각한다. 표현의 유무가 있을 수는 있어도 그래도 모든 사랑 중에서는 거의 영원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모는 자식의 성장을 위해 사랑을 숨길필요도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랑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알고 보면 사랑을 하는 경우가 사랑을  받는 경우보다 더욱 생기를 찾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성을 사랑하는 건 인정하기 싫겠지만 대부분 유효기간이 있는 건 사실인 것 같다. 그 어떤 사랑보다 강렬하기에 그 여운이 길고 그 여운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힘을 얻게 되는 것 같다.


그에 반해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은 쉬운 말로 그 유효기간이 없는 것 같다. 오래오래 계속 사랑스러우니 말이다. 자식의 성장을 위해서 표현을 자제하거나 그럴 필요는 있지만 계속 사랑스럽다. 자식을 향한 사랑은 깊은 산속 옹달샘처럼 계속 끊임없이 샘솟는다. 계속 사랑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있기에 평생 덜 외롭게 살 수 있는 것 같다.


산책로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날마다 나타나는 고양이 집사가 있다. 날마다 먹잇감을 가지고 와서 고양이를 부르고 고양이를 향해 소곤소곤 대화를 청한다. 산비탈 텃밭에는 날마다 출근하는 텃밭러들이 있다. 동물이냐 식물이냐의 차이는 있지만 각자의 애정하는 대상을 향해 사랑을 쏟는다.


얼마 전에 내린 비로 내 텃밭의 상추가 손톱만큼의 크기로 자랐다. 주변 밭주인들이 다 모여서 그걸 보고 고개를 가까이 들이밀며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몰라하면서 환한 미소를 짓는다. 상추는 우리의 시선에 화답하면서 반짝거린다. 갈 곳을 잃은 우리의 사랑을 텃밭의 식물들이 흡수하는 것 같다. 식물들은 쑥쑥 자라는 걸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역할을 맡았다.

 

외로움에 떨고 있을 땐 대부분 사랑을 받지 못해서 그 외로움이 절정으로 치닫는다고들 생각할 수 있다. 러나 알고 보면 사랑을 받아줄 대상이 없어서 외로워지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으나 그 누군가는 내게 관심이 없고 그런 관심 없는 사람을 향해 사랑을 계속 주는 나는 더욱 쓸쓸해지니 외로움의 절정을 맞이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다.


사랑할 대상으로 사람을 택하자니 사랑은 고사하고 감당할 수 없는 외로움에 침몰할 것 같아 그 두려움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미리 겁먹게 되고 주저하게 되는 것 같다. 주는 만큼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는 동물이나 식물을 찾는 게 안정적이라는 생각에서 일까, 쉽고 편안한 길을 선택하게 된다. 스스로가 쇄약 해질수록 차라리 애완동물, 식물들을 찾게 되는 것 같다. 아마도 내심 감당할만한 대상이라는 생각에서일수도 있다.


쓴 약처럼 사람의 감정중에 외로움 쓸쓸함 그 또한 약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때론 감당하기 힘든 자연재해처럼 도저히 이겨내기 힘든 지경에 이를 정도의 외로움이 밀려올 수도 있다. 쓰나미가 핥고 가는 것처럼 외로움이 영원히 볼 수 없는 어딘가로 데리고 가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 외로움을 걷어낼 사랑을 쏟을 대상을 찾아야 한다. 안전하고 건강한 여생을 위해서. 동물이든 식물이든 소소한 취미생활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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