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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Oct 30. 2023

빠름 그리고 느림

인생

  퇴근길에 수북이 쌓인 낙엽을 보았다. 출근길엔 주변이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신호등이 초록인지 빨강인지 그곳만 본다. 집에서 건널목을 건너야 직장을 갈 수 있으니까 그곳을 건너기 위해 멀리서부터 신호등을 보면서 속도조절을 한다. 걸을 것인지 뛸 것인지. 반면에 퇴근길엔 아주 느긋하게 주변 풍경을 보면서 신호등이 바뀌든지 말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있는 게 시간밖에 없는 사람처럼 여유를 부리며 걷는다.


하루 중에도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다. 인간의 일생 또한 마치 하루처럼 산다. 초년에는 뛰고 뛰고 있는 힘을 다해서 뛴다. 무얼 위해서 뛰는지도 모르고 그냥 뛴다. 어느 은퇴한 유명한 사람의 인터뷰에서 "어떤 생각으로 하셨습니까?"라고 묻자 "그냥 했습니다." 별생각 없이 해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냥 했다는 것이다. 열정 넘치게 뛴 덕분에 일찍 여유를 갖게 되고 주변에 시선이 가고 무언가도 느끼게 되고 이름하여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자가 되었다.


젊음은 아침이요 늙음은 저녁일까? 사람들은 일출을 굳이 젊음으로 비유하지는 않지만 황혼이 물드는 시기를 많이들 노년에 비유한다. 봄은 유년기요 여름은 청춘이고 가을은 중년이며 겨울은 노년인가? 일생을 하루에서도 찾을 수 있고 계절의 변화를 보면서도 느낄 수 있다. 다양하게 비유하고 또 느낀다. 그런데 남들은 이미 다 느꼈을법한 걸 최근에 알아차렸다.


최근에 엄마가 입원한 병원엘 갔다. 그곳에 계신 환자분들은 대부분 휠체어에 의지한다. 그분들 중에 그래도 좀 괜찮은 분이 휠체어 대신 지팡이 비슷한 의료기기를 의지하고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기는 모습을 봤다. 아주 말할 수 없이 느린 걸음으로 걷기 연습을 하시고 계셨다. 느리든 빠르든 서계신 환자분을 보면 많이 부러워한다. 언젠가는 걸을 수 있을 거라는 추측을 해서일 거다.


세간에 떠도는 풍문으로 시간의 속도를 본인 나이의 2배속으로 느낀다고 들었다. 즉,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간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그냥 그런가 보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앞자리가 5자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는데 금세 6자가 코앞이다. 진심으로 나이의 앞자리 바뀌는 게 싫다. 5십대가 오래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했다. 아마도 나이가 많고 적고를 불문하고 생각은 젊을 때와 다르지 않다는 걸 말하는 말일 거다.


오십 대 중반을 넘기는 시점에서 볼 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가 않다. 정신은 젊을 때와 다르지 않다는 본뜻은 공감한다. 그러나 육신이 좀 달라지는 걸 느끼면서 나이의 변화가 없으면 그래도 육신이 더 빨리 늙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나이를 붙잡고 싶은 거다. 노화는 진즉부터 시작되었을 거다. 그러나 육안으로 그리고 몸소 체험으로 목격하게 된다. 노화를. 아프니까 마음처럼 뭐든 빨리 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느려진다.


젊고 건강하면 뭐든 빨리빨리 할 수 있어서 하루 동안 수많은 일을 해낸다. 그래서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하루가 느리게 가니까 나이도 천천히 바뀐다고 느낀다. 그러나 늙으면 뭐든 빨리 할 수 없어서 느리게 느리게 해낸다. 젊을 때 했던 것에 비교하면 반의 반도 못 해낸다. 그래서 하루에 해 내는 양도 적고 해서 금세 하루가 가버린다고 느낀다. 건강이 허락하지 않아서 쉽게 말해서 늙어서 몇 걸음 못 뛰고 하루가 삽시간에 가버린다. 그런 게 반복되다 보면 시간의 속도가 말할 수 없이 빠르다고 체감한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이 있다. 늙어가는 걸 외면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다. 젊을 때 즉 빨리 뛸 수 있을 때 전력질주를 해야 된다. 신체가 노화되기 전에 '여유'라는 걸 맛보아야 한다. 열심히 살아서 되도록이면 빨리 경제적 자유를 되찾고 그 후로 본인이 하고자 했던 일들을 홀가분하게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젊어서 초 집중해서 뛰고 하루빨리 책임으로부터 해방되고 오로지 본인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젊을 땐 빠르게 가능하면 뛰는 시간을 단축해서 뛰고 좀 남은 젊음을 한껏 누릴 수 있도록 살아야 한다. 90세 100세까지 뛰고만 있을 수 없다. 뛸 수 있을 때 뛰고 신체가 허락하지 않는 시기엔 좀 누리면서 살아야 한다. 쉽게 말해서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 젊어서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까지 힘들게 살아야 한다. 인생 주기에 대한 순응, 그것 또한 필요하다. 때가 되면 느리게 갈 수밖에 없다. 느려질 때 느리게 살도록 허락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대신 빠르게 살아야 할 땐 제대로 빨리 살아내야 한다.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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