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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ng long Dec 13. 2023

눈높이

  복 많은 나는 내 생일 뒷날이 시어머니 생신이다. 사정상 찾아뵙기 힘들 경우 남편에게 봉투를 전하곤 한다. 봉투에 "어머님, 생신축하드려요."라고 써서 남편 소지품 있는 곳에 두고 남편이 그 봉투를 발견하면 "뭐 생각난 거 없어?"라고 묻는다. 의역하자면 "내일이 내 생일인데 어떻게 할 거야?"라는 말이다. 빙그레 웃으면서 "다 생각이 있지."라고 답한다.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보이면 그걸로 '그래, 그 미소면 됐어.'라고 생각하면서 뭘 더 바라지도 않고 흡족해한다.  


알고 보면 나란 사람은 너무 눈높이가 낮다. 뭔 생뚱맞은 소린가 하면, 너무 별거 아닌 거에 쉽게 기뻐하고 감동해 버린다. 너무 주체할 수 없어서 자랑도 잘한다. 뭘 특별하게 잘해서도 아니고 쉽게 기뻐하고 감동해 버리는 순전히 아주 많이 낮은 눈높이 때문이다. "보여주고 싶은 기질이 강하여 손해 보는 경우가 있다."라는 글이 내 사주풀이에 쓰여 있는 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다. '별수 없구나, 사주에 나왔다니 어떻게 할 수 없네 빠른 인정이 답이네.'라고 생각해 버렸다.


별거 아닌 거, 아주 작은 거 뭐 그런 거에까지 감동한다. 좀 더 큰 기쁨은 평생 간직하면서 그 걸 에너지로 내 인생 연료로 사용해 버린다. 대표적인 경우 몇 가지를 생각해 내자면, 중학교 수학선생님께서 "교직 경력 30년 동안 내가 낸 문제를 다 맞은 경우는 네가 처음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평생 난 수학을 좋아하고 잘하는 사람이라고 내게 각인시켜 버렸다.


결혼을 위해 직장을 퇴직하는데 직장 상사께서 "어머님께 감사하다고 말씀 전하시게. 자네를 훌륭하게 키워서 우리 회사로 보내주셔서."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엄마가 "네가 제일 순했다.""널 많이 믿고 의지했다."라고 하신 말씀. 남편이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잘하는 건 엄마 덕분이다."라고 했던 말. 내 친구가 라디오에 신청해서 잊지 못할 감사한 사람으로 나를 지목해서 라디오 생방송에 목소리 출연을 했었던 거.  


누군가는 어떻게 무엇으로 사는지 모르지만 난 유별나게 주변분들의 칭찬 한마디로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면서 산다. 인정욕구가 남다른 건지 칭찬에 춤을 심하게 추는 건지는 구별하기 힘들지만 난 누군가가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작은 칭찬에 큰 힘을 얻어서 산다.


그 와중에 내가 그래도 별것 아닌 거에서부터 시기 질투를 불러일으킬 것 같은 것까지 자랑을 하면서 살지만 그 와중에 지금도 주변사람들과 더불어서 생존하고 있는 주특기가 있다. 그건 내 흉이 될만한 것도 과감 없이 솔직하게 다 말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큰아이가 "엄마는 앞뒤가 똑같은 투명인간 그 자체."라고 말한다. 그만큼 숨김없이 있는 사실을 그대로 표현하면서 산다. 그 전제는 '사람은 대동소이하다.'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들으면 "저 사람 왜 저러지?"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들어 내 속에 꽉 차 있는 게 있어서 주체하기 힘들다. 장성한 우리 아이 셋을 생각하면서 '너무 사랑스럽다.'라는 진한 마음 때문에 감당할 수 없이 벅차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부터 최근까지 지금처럼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었던가 싶다.


그놈의 대학이 뭐라고 감각 세포를 일시정지 시켜놓고 간절한 마음 그거 하나로 뛰고 또 뛰면서 살았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 몽글몽글하게 사랑스러웠었던 그 마음이 로그아웃되듯이 끝나버린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마음이 다시 내 마음속에 들어찼다. 한집에 사는 것도 아닌데 놀랍다. 무슨 행동이든지 모든 면면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좋은 것만 선택적으로 오래 기억하는 나는 "자식복이 있다."라고 말한 점술가의 말을 생각해 내면서 그냥 존재 자체로 행복해하는 아이들이 셋씩이나 있음에 감사하면서 산다.  


행복이란 연중무휴 자체생산 가능한 산물이었던 것이다. 딱히 어떤 특정 현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나 홀로 내게 마음대로 줘버린다. 예를 들자면 상대적인 현상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자식들을 심하게 사랑스러워해 버리고 그로 인해 또 심하게 행복을 느껴버린다.


기대치나 기준이 높으면 평생 행복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런데 별거 아닌 거에 쉽게 행복해버리는 나는 아주 행복함을 느끼기에 특화된 사람이다. 의식적인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태생이 그런 것 같다. 슬그머니 이참에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 아주 별거 아닌 것에 심하게 기뻐하며 혼자 감당이 안돼서 자랑까지 해버려서 불편했을 것인데 그걸 감래해준 지인들께 감사를 표한다. 행복이 고픈분들은 자체 설정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눈높이를 낮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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