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Dec 07. 2023

로또가 맞는 경우도 있다.

여행, 공감, 동료

  제법 폼나는 풍성한 갈대가 때 늦은 여행길에 나선 우리들을 반겼다. 대지위의 모든 생물들이 바스락거리는 12월에 여행이라, 좋은 선택은 아닌 듯 하지만 즐비한 나목을 바라보며 나나 너나 다를 것 없는 완연한 무채색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고맙게도 근래에 보기 드문 포근한 날씨였다.


문화탐방이라는 명목으로 1박 2일의 일정으로 1호차 2호차 3호차 4호차 뭐 그런 버스들 중의 2호차를 타고 출발했다. 한 번도 사본적 없는 로또가 당첨되어 버리는 쾌감을 출발 전부터 느껴버렸다. 우리 직장 동료는 딱 한 명이고 모두 낯선 사람들이 묘한 공통점을 가지고 모여서 함께 떠나는 여행이었다.


출발 전 주최 측에서 2인 1실의 숙소 명단을 단톡에 공개했다. 그런데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나와 막역한 지인의 직장 동료가 나의 숙소 파트너가 된 것이다. 100명이 훨씬 넘는 인원들 중에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마치 로또에 당첨되어 버린 기분이었다. 처음 본 그분은 내 지인과 같은 직장 동료라는 이유 하나로 거의 10년간 알고 지낸 사이처럼 생각되었다.


버스에서부터 함께 앉기 위해 지인에게 연락해서 인상착의를 물었다. 애매해서 그냥 연락처를 그분에게 줘서 서로 통화하여 만났다. 이산가족 상봉도 아니고 서로 너무나 반기면서 신나는 여행을 시작했다. 문화유적지를 탐방하고 간간이 강연을 듣고 그게 주요 일정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으로 서로의 이력서를 써서 주고받는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서로를 탐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 듯 서로 살아온 시간들을 펼쳐 보였고 가족들을 소개하고 참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게 속 마음까지 모두 쏟아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둘이서 바닷가를 거닐고 싶어서 갔는데 지인이 함께하지 못해서 아쉬웠는지 전화로 출현했다. 짧지 않은 시간을 직장에서 생긴 문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우리 둘과 번갈아 가면서 통화를 하여 마치 셋이서 바닷바람을 쏘이는 듯했다.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강연을 통해 뇌의 면적이 확장되는 효과를 맛보았다.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 관람과 역사의 현장과 잊고 살았던 아주 어릴 적 보았던 생활 모습의 재현 등 다채로운 관람을 하고 준비해 준 주최 측에 고마운 마음을 갖게 되었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처음 만난 나의 파트너였다. 살아온 지난 시간들이 어떻게 그렇게 비슷할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우연이었다. 시중에 나도는 유머 중에 배우자는 로또라는 말이 있다. 왜냐하면 서로 안 맞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어제 처음 본 낯선 사람이 이렇게 잘 맞을 수 있을까? 어린 시절은 물론이고 가치관이나 삶의 방향성까지 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에서의 애환까지 어쩌면 이렇게 서로 공감 100%, 이게 말이 되는가?


백 년을 회로 하자고 연을 맺는 배우자는 안 맞아서 로또고 1박 2일 만난 처음 본 여행 파트너는 맞는 로또였던 것이다. 서로 단막극을 찐하게 찍고 헤어지는 기분, 난생처음 느껴본 형언하기 힘든 놀라운 경험이었다. 더 놀라운 건 어떻게 처음 만난 사람이 서로 숨기지 않고 모두 꺼내 보이는 서바이벌 게임이라도 하듯이 경쟁적으로 모든 것을 다 얘기하는 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번 여행은 참 특별한 여행이었다. 사람의 심리, 처음 본 낯선 이의 마음 그리고 나도 몰랐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다채로운 경험을 한 놀라운 여정이었다. 서로에게 동질감을 느끼면 사람은 완전하게 무장해제된다는 사실과 여행이란 무언가를 얻기 위해 떠나는 것보다 나를 정화시키고 내 안의 무언가를 덜어내는 시간이란 걸 알게 되었다.


마음 맞는 파트너를 만나면 스스로도 찾지 못했던 깊이 숨어 있는 것까지 꺼내주는 역할을 한다는 걸 알았다. 잊고 살았던 아름다운 추억도 꺼내주고 버리고 싶었던 응어리들도 꺼내주는 제대로 된 여행을 할 수 있게 된다는 걸 느꼈다. 마법에 걸린 듯한 좋은 시간은 내겐 맞는 로또였다. 오래도록 기억할 것 같다. 학인지 거위인지 구분하기 힘든 호수와 갈대 사이에 서 있던 하얀 새와 함께.^^


 



작가의 이전글 화를 낸다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