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했다. 성장기에 어떤 결핍이 있었기에 난 그리도 칭찬에 갈증을 느끼고 칭찬에 온몸이 반응하는 걸까? 태생이 감성적인 면이 발달되어 있지만 워낙 눈높이가 낮아서 작은 것에 감동도 잘한다. 그래서 작은 칭찬도 세상에 없는 보석처럼 오래 간직하고 그로 인해 힘을 얻고 산다. 그 어떤 포상보다 진정성 있는 칭찬 한마디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해버린다.
가끔 '나만 그럴까?'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는 말이 국룰처럼 통용되고 있으니 많은 이들이 같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란 사람의 사용설명서라고 해야 할까? 나를 움직이게 하려면 작은 칭찬이라도 곁들이면 훨씬 쉽고 빠르게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란 사람에 대한 뒷면의 사용설명서엔 칭찬을 하는 것 또한 받는 것 이상으로 잘하는 사람이라고 쓰여있을 것만 같다.
무슨 말인가 하면, input, output 속도가 장난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파악을 하면 바로 반응을 하는 특징이 있다. 그것도 남다른. 그래서 내가 낳은 아이에게도 "엄마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투명인간"이라는 말을 듣고 산다. 좋은 말을 들으면 누구보다 크게 감동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의 엄마로 살면서 아이들의 성장과정 중 변화되고 발전하는 면면들에 아주 찐하게 반응하곤 했다.
아이들 엄마로 근 삼십 년을 그렇게 살았으면서도 별 의식 없이 살았다. 이제야 여유를 갖고 뒤돌아보니 '나란 사람은 그랬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작은 것에 쉽고 크게 감동해 버리는 특징이 아이들에게 좋은 작용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이가 뒤집으면 또 아이가 일어서면 그리고 한 발 한 발 걷게 되면 이 세상에 유일하게 우리 아이만 그런 것처럼 매번 환호하고 박수를 쳤었다.
지금도 기억하지만 큰아이가 처음으로 유치원을 가던 날 유치원 버스를 태우면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아마도 처음으로 나와 분리되는 순간이라 뜨거운 것들이 눈으로 몰려 눈물을 흘리게 했었던 것 같다. 뿐만 아니라 유치원 운동회를 하는데 운동장에서 많은 아이들이 노래에 맞춰서 율동을 하는데 처음으로 우리 아이도 함께 율동을 하는 모습을 보고 또 심하게 감동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을 때마다 부둥켜안고 점프하면서 함께 기뻐했었던 순간들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이자 내 부모님들께 실시간으로 소식을 알리고 함께 기뻐했었다. 그런 과정 속에 있을 때는 그냥 당연한 거였고 마치 일상이 그랬었던 것만 같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 모든 행동이 아이들을 향해 온몸 온마음으로 칭찬을 하고 살았었던 거였다는 것을 돌이켜 생각해 보니 알게 되었다.
큰아이를 키우면서 약간의 궁금증이 있었다. '왜 매번 저렇게까지 의욕적일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학교 대표로 수많은 분야에서 선수로 뛰면서도 또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기면 그곳에 가서 오디션을 보고 왔었다. 이러저러한 것을 해야 하니 시간이 겹치고 좀 힘들지 않겠냐고 하면서 다시 생각해 보라고 하면 아니다고 그걸 꼭 하고 싶다고 했었다. 너무 그래서 다른 학생들에게도 기회가 가야 되는데 집에서 부모가 아이에게 권해서 그럴 거라고 생각할까 싶어서 걱정하는 정도였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어쩌면 엄마인 나 때문이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뭐든 열심히 해서 잘하면 유난히 진하게 감동하고 기뻐하는 엄마를 보면서 아이는 크게 의욕을 불태웠었던가 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말이나 글로 그 감동이나 기쁨을 표현하지 않았어도 온전히 느낌으로 엄마의 반응을 칭찬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고래처럼 춤을 그렇게 췄었던 것이다.
언젠가 직장 상사가 고민을 말하면서 방법이 있겠냐고 물었다. 아이가 셋인데 서로 너무 싸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부모가 엄하면 자식들이 서로 대동단결한다고 말했었다. 실제로 직장 오너가 너무 히틀러 스타일이면 직장 내 동료들끼리 서로 사이가 좋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심정이었을 것이다. 웃픈 상황이긴 하나 엄마가 엄해서인지 우리 아이 셋은 남다르다. 거의 싸운 걸 본 적이 없다. 서로 방패가 되어주려는 모습을 자주 봤었다.
아이들을 양육하려면 매번 칭찬만 하면서 기를 수 없다. 귀한 자식일수록 회초리를 들라는 말이 있다. 생활인으로 사노라면 뭐든 아주 이상적일 수만은 없다. 그러나 정성을 다하다 보면 어느새 높이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래도 본인이 원하는 고지에 서있을 날은 올 거라는 것이다. 여러모로 부족하여 많은 이들을 감동시킬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의 삶이 나의 자식들의 길잡이는 되어줄 수 있게 살아야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