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Dec 23. 2023

삶의 목표

목표

  삶의 목표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흔히들 "너의 목표는 뭐니?"이런 질문 속의 '목표'를 생각하게 된다. 나의 목표가 뭔가, 또 너의 목표가 뭔가 보다 목표라는 건 우리 인생의 계단 같은 거라는 걸 생각해 보았다. 마치 일 중독처럼 어떤 목표를 세워서 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강박의 발로인지는 모르겠지만 '목표'를 세워서 사는 건 삶의 생기를 갖게 하는 일임은 분명할 것 같다.


삶의 보편적인 목적은 흔히들 '행복한 삶'일 거라고 생각할 수 있다. 행복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생각하면서 특정 목표를 세우게 될 것이다. 젊은이든 노인이든 각자의 시점에서 행복하기 위한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런데 가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그저 망망대해에 둥둥 떠있는 것만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경우들이 있다.


목표가 없다는 건 꿈을 꾸지 않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꿈을 꾸지 않는 것은 내가 무얼 하고 싶은지, 무얼 좋아하는지, 또 무얼 잘하는지를 찾으려 들지 않는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태어나서 자라면서는 모르는 것을 아는데 초점을 맞춰서 살아간다.


삶에 필요한 지식이나 규범을 아는 것과 함께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을 했어야 했는데 당최 '나'라는 아주 소중한 존재는 일단 덮어놓고 무작정 나 외의 다른 것들을 많이 알아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바쁘게 살았다. 어떤 면에서 아주 원시시대와 다름없는 수렵어로 작업을 잘하기 위한 방법을 습득하는데 몰두했던 것이다.


물론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될 때 나의 행복 주변의 행복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병행해서 생각하면서 그런 방향성을 추구할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고 본다. 젊은이들 중에는 '고기 잡는 법'을 알려고 하는 노력을 하려고 들지 않는 경우도 있고 또 중년을 넘긴 사람들 중에는 너무 무료한 삶을 사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본다.


많이들 태어난 것 자체를 본인의 선택이 아니었다고 하면서 삶 자체에 대해 비관적인 시선을 갖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정작 성장을 거듭하면서 본인이 선택할 수 있는 많은 경우 앞에서 조차 주체적으로 임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꿈'이라고까지 표현할 것이 아닐지라도 '간절히 뜻을 품고 노력하면 꼭 이뤄진다.'라고 본다. 스스로의 뜻을 막기보다 좀 힘들더라도 스스로에게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많이 줄 수 있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우리 아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목표'가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목표가 있는 이상 그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시기를 지났기 때문에 온전히 본인들은 본인들이 길러야 되는 입장이 되었다. 본인들이 본인들을 잘 길러내고 또 자식을 낳아 혼신의 힘을 쏟아서 잘 기르고 그렇게 인생이 윤회하듯 흘러가는 것 같다.


계절이 바뀌려면 환절기에 약간의 진통이 있듯이 부모의 적극적인 역할이 끝날 시점에 육체적 정신적 방황의 시간이 있었다. 삶의 이유, 삶의 목표가 없어진 것만 같은 시간들을 겪으면서 생뚱맞게 '나'를 찾아 헤맸었다. 내가 누구인지, 나는 무얼 좋아하는지, 어떻게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나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한참을 헤맸었다.


시간 속에서 비로소 내가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를 위해 내가 온 시간을 바쳐 살아야겠다는 방향감각을 찾게 되었다. 시작단계라 조금은 내게 인색하고 또 챙기는 자체에 대해 어색해하면서 낯설어하면서도 뭐든 시작은 다 그러려니 하면서 적응해 가는 중이다. 사는 그날까지 하고 싶은 걸 발굴해 가면서 하고 생기 있게 살 생각이다.


주변에 살아가는 선배분들을 보면서 좀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연명(延命)이 목표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무료(無聊) 해 보였다. 어련히 알아서 잘 살고 있는데 오지랖이 또 발동했는지 모르지만 늙을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이유는 시간을 너무 헐렁하게 사용해서 빨리 간다고 느낀다는 말을 들었다.


본인들이 젊었을 때처럼은 아니더라도 더 많은 일들을 하면서 알차게 생기 있게 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아직 젊은 입장인데도 '시간 앞에 장사 없다.'는 말을 실감하기 시작했는데 보는 것과 겪는 것은 많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은 한다. 그렇지만 다가오는 노후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서 아름다운 황혼을 그려볼 생각이다.

작가의 이전글 고래도 춤추게 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