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ung long Jan 17. 2024

세 번의 경험

인간관계, 자녀교육

  최근에 아주 오래간만에 이웃에 살았던 친구라고 할 수 있는 지인에게 전화를 받았다. 날마다 서로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던 사이었었는데 이사를 가고부터 아주 드물게 통화를 하곤 한다. 그 친구는 우리 아이들 근황을 물었다.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특히 아이 셋이 각자 원룸생활을 하는지 알기에 자세하게 물었다. 월세는 얼마인지, 생활비는 얼마씩 들어가는지, 어떻게 얼마씩 보내주는지, 사실대로 알려주었다. 이유는 기숙사 생활을 하던 아이가 자취를 하고자 해서 많은 정보가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십여 년을 넘게 관계를 유지하고 살면서 느끼는 점이 있었다. 다양한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데 아이들 공부와 관련된 정보는 묻고 듣기만 하고 같은 질문을 하면 말끝을 흐려버리고 답을 안 하는 특징이 있었다. 우리 둘째 셋째와 동학년인 아이들을 기르면서 우리 아이들의 여러 면면들을 궁금해하면서 아마도 본인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참고를 하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좋은 정보는 공유하는 게 맞는데 대체로 본인이 궁금해하는 걸 나는 투명하게 말하고 같은 질문을 하면 함구해 버리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때마다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이 친구와 통화를 끝내고 지나가버린 인연이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어린 시절 근 십여 년간 막역하게 지냈던 지인들이 있었다. 한분은 셋째가 우리 큰아이보다 한 학년 위인 아이의 엄마였다. 다른 한분은 큰아이가 우리 큰아이보다 한 학년 아래인 아이의 엄마였다.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날마다 만나서 그림을 그렸다. 우리가 만나서 그림을 그리고 담소를 나누는 건 뭐가 밥이고 반찬인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둘 다 소중한 일들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시간을 서로 함께하면서 말할 수 없는 깊은 정이 쌓였었다.


그런 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마치 지진이 일어나서 건널 수 없이 먼 곳에 살게 된 것처럼 이별을 하게 되었다. 나이가 위인분은 우리가 이사를 했는데 그 후 간간이 안부를 묻는 통화를 했었는데 통화 중에 이런저런 핑계를 들먹이며 바쁜 척을 하며 통화를 꺼리는 눈치를 보였다.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모르지만 그분의 셋째가 대학 진학을 한 해였었던 것이다. 두 번째분은 우리 집과 같은 지역으로 이사를 와서 여전히 아이들 기르는 것이며 이런저런 소통을 계속해왔었다. 그런데 그분도 아이들이 대학을 진학하자 소식을 뚝 끊었다. 그쪽에서 일방적으로. 십 년의 인연을 이유도 모른 채 끝을 내고 말았다.


우리 아이들의 성장과정을 탐색하고 밴치마킹하려는 의도를 느끼면서도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알려주겠다는 마음으로 여과 없이 알려주곤 했었다. 그러나 사람인지라 느껴야 하는 씁쓸함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리석게도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동안은 꿈에도 본인들이 취하고자 하는 것을 취한 후 관계가 끊어지리라는 걸 상상도 못 했었다. 아이들을 기르는 게 무슨 비즈니스도 아니고 어떻게 그런 마인드로 인간관계를 도구화할 수 있는지 지금도 세상 참 별일이 다 있다는 생각으로 헛헛한 마음을 다잡을 수가 없다.


한두해 알고 지냈던 사이라면 그냥 잊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많은 시간 함께 쌓아온 추억이 있는데 그걸 송두리째 용도가 끝났으니 폐기하겠다는 생각인지 이런 게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아이 셋을 키우다 보면 직접 경험한 것도 많지만 아이들의 경험이나 아이들 친구들의 경험을 접하게 된다. 누적된 정보를 참 많이 귀중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잊히기 전에 아이들을 기르는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많았다.


본인이 교사인데 내게 아이들의 공부 조력자로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자문을 구하는 경우가 있었다. 나는 아주 자세하게 방법이나 교재 학원 등을 알려준 적이 있었다. 교사인 어떤 분은 자신의 동생이 고등학생인데 엄마 대신 본인이 동생을 위해 애써봐야겠다고 방법을 물은 적도 있었다. 놀랍게도 최근엔 예전 직장 동료의 지인이라고 낯선분이 내게 전화를 해서 학원이며 교재 지도방법 등을 물어오기도 했었다. 기꺼이 아낌없이 알려주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건 기쁜 일이다. 공부도 가르치다 보면 더 깊게 깨우치게 되면서 본인이 더욱 성장하고 발전하는 기회가 되곤 한다. 마찬가지로 생활의 지혜나 방법도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좋은 정보를 나누다 보면 스스로 더 넓고 깊어지면서 한걸음 더 큰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우리 아이들 과외선생님을 찾던 때가 생각난다. 과외선생님을 찾는다는 건 그 과목을 업그레이드시켜줄 능력자를 찾으려고 했어야 취지에 맞다. 그런데 이력을 보고 얼마나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았는가를 보려고 노력했었다. 그 모습을 가까이서 보고 배웠으면 해서 아이들의 롤모델을 찾아주고 싶어 했었다.


세상에는 수많은 스승이 있다. 그런데 가장 훌륭한 스승은 부모다. 부모가 아무리 많은 정보를 구해다 준다고 하더라도 바른 심성이 없으면 자식은 훌륭하게 성장하기 어렵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모든 면에서 모범이 되면 자식은 부모를 본받을 것이다. 내 마음대로 되는 자식은 없어도 날 본받는 자식은 있다고 하지 않는가?!  

작가의 이전글 공기 저금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